[취재] 다다름 필름 파티

조그마한 얼굴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뽐내는 TV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늘씬한 마네킹을 떠올리게끔 한다. 몸무게 앞자리 수가 ‘4’인 대중매체 속의 연예인들은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자 미의 표본이 됐다. ‘설현 다이어트’ ‘수지 화장법’ 등이 성행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를 닮고 싶어했고, 이런 미의 표본 속에 여성들은 자신을 스스로 가두기 시작했다. 이런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거부하고 다양한 외모와 아름다움에 대한 바른 인식을 확산하려는 이들이 모여 색다른 파티를 열었다. 지난 8월 26일 서울 NPO 지원센터에서 열린 제3회 외모 다양성 영화제 ‘다다름 필름 파티’가 바로 그 현장이다.
‘외모 다양성 어벤저스’ 다다름 네트워크는 작년 여름을 첫 회로 매 반기 다다름 필름파티를 주최하고 있다. 다다름 네트워크는 66100, 여성환경연대, 한국여성민우회, 나는니편 등의 단체로 구성돼 있다. 여성환경연대 경진주 씨는 “소속된 단체들마다 외모 다양성을 바라보고 풀어내는 방식이 다르다”며 “다른 관점에서 본 외모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나가기 위해 네트워크를 결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외모 다양성’이라는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심도 있고 유쾌한 소통의 장을 만들고자 2016년 여름 다다름 필름 파티를 열었다.

미디어 속 ‘외모 다양성’ 찾기

다다름 필름 파티의 제목은 ‘외모, 왜 뭐?’다. 다다름 필름 파티 기획자 김문경 씨는 “사람들에게 ‘내 외모가 어때서?’라고 질문하는 이 제목은 내 외모는 평가 대상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회 필름 파티에서 선정된 영화엔 모두 이 슬로건이 녹아 있다. 다다름 필름 파티가 막 첫걸음을 뗀 1회 때는 영화 <박강아름의 가장 무도회>와 <프레셔스> 상영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사회에 던졌다면, 2회 때는 이채로운 전시와 영화 <살 빼지 마요> 등을 통해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내용과 풍부한 볼거리로 관객들을 매혹시켰다. 다다름 네트워크는 슬로건의 내용대로 객체로서가 아닌 주체로서 ‘나’의 외모를 받아들이자는 그들만의 가치관을 끊임없이 내비쳐왔다. 다다름 필름 파티는 외모지상주의에 피로감을 느꼈던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꾸준히 호응을 받아 3회까지 이어졌다. 김문경 씨는 “이번 행사엔 스태프 제외 150여 명이 참여했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목표 후원금 100만원을 초과 달성했다”며 “필름 파티의 입지를 탄탄히 다져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규모가 커진 이번 필름 파티에서도 다다름 네트워크만의 문제의식을 관통하는 영화들이 상영됐다. 이날 상영작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여성인권영화제 등에서의 상영작 중 외모 다양성과 관련된 영화들로 선정됐다. 제일 처음 상영된〈마이 스키니 시스터>(산나 렌켄 감독)에선 ‘피겨 스케이터는 날씬해야 한다’는 자기 강박 아래 섭식 장애를 앓고 있는 피겨 스케이터 카티야와 이를 같이 극복해 나가고자 하는 가족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상영 후 진행된 짧은 토크 ‘마른 몸에 대한 사회적 강박과 거식증’에선 섭식장애 극복 모임 나는니편, 당신은 그대로 아름답다고 말하는 패션 잡지「66100」관계자들이 직접 토크를 이끌어 나갔다. 나는니편 조은비 씨는 “카티야처럼 외모에 대한 사회의 획일화된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는 분들이 섭식장애를 겪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러한 외모 강박 때문에 장애를 겪는 여성분들이 진정한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영화 소감을 말했다. 이어 관객 박하은 씨(22)는 “한국에서는 자신의 장애를 인지해도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아 안타깝다”며 “외모 강박에 의한 섭식장애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이후에는 ‘내 몸은 나다’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게 만드는 사회 현실과 그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전하는 영화가 이어졌다. <육체미소동>(정서인 감독)이 그 대표적인 영화다. <육체미소동>은 남성이 뛰놀던 필드의 가장자리에만 머물러있던 여성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뤘다. 이 영화는 건강한 신체 활동을 향한 열망과 그를 방해하는 한국 사회 분위기를 담아 많은 여성 관객의 공감을 끌어냈다. 이날 상영된 영화들의 내용은 제각기지만 각 영화 모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자’라는 결론에 닿는다. 영화 상영 후 이어진 감독과의 대화에서 직접 섭식 장애를 겪었다고 밝힌 <육체미소동>의 정서인 감독은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내 몸을 혐오하는 것은 곧 나를 죽이는 일”이라며 “힘들겠지만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려는 노력이 계속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이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방법’에 관해 묻자,「66100」김지양 편집장은 “내가 내 몸을 자주 객관적으로 보고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온전한 ‘나’에 대해 이해하고 사랑하는 첫 발걸음”이라고 대답했다.

다양한 몸, 다양한 아름다움

상영회와 더불어 ‘자신의 몸은 자신의 것’이라는 슬로건 하에 흥미로운 부스들이 운영됐다. ‘브라보관소’를 운영하는 언니미티드 김수빈 씨는 “브래지어에 대한 여성의 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며 “오늘만큼은 내 몸을 답답하게 하는 존재를 벗고 즐기자는 취지에서 브라보관소를 운영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상영된 <춤춰브라>에서 이푸름 감독이 “여성들을 억압하는 브라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며 여성들은 자신의 속옷에 대한 객체가 아닌 주체”라고 말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또한 한국여성민우회는 자신의 몸에 대한 사람들의 발언을 적어보는 ‘외모피로지도 그리기’ 부스를 운영해 그 발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여성을 위한 해소의 창구를 마련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외모피로지도' 부스를 운영했다. 외모피로지도엔 참가자들이 자신의 외모에 관해 들었던 말들이 적힌 메모지로 가득했다.

이 밖에 여성환경연대는 다양한 사이즈의 마네킹을 전시하며 비현실적인 마네킹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았다.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을 연구하는 ‘세컨드필름매거진’ 부스를 운영한 에디터 곽민해 씨는 “현재 영화 속의 여성 역할은 엄마, 남주인공의 상대역 등에 국한돼 다양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앞으로 여성들만의 주체적인 캐릭터가 나오길 희망한다”고 매거진을 창간한 이유를 밝혔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김민지 씨(21)는 “나는 내 외모가 마음에 드는데도 내 외모를 보고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속상했다”며 “이런 자리가 마련됐다는 것 자체에 큰 의의가 있고 다다름 필름 파티와 같은 다른 행사들도 열려 사회 속의 이런 부정적 인식이 바뀔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대로의 나’가 아름다운 것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말이 성행하듯 경쟁 사회에선 좋은 인상, 준수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종종 다른 사람들보다 레이스에서 우위를 선점하기도 한다. 각종 매체는 다양한 외모를 다루기보단 화려하고 가꿔진 이들을 노출해왔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서 외모지상주의가 심화됐고, 결국엔 다양한 ‘개성’이 미디어에 노출된 외모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똑같은 ‘못생김’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몸, 다양한 아름다움. 모두 다르고, 그래서 좋아요.” 다다름 필름 파티가 끝날 무렵, 파티에 참석한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외친 구호다. 힘차게 외쳤던 이 한 마디는 다다름 필름 파티가 계속될 것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지난 3회 동안 외모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외모 지상주의에 지친 현대 여성들의 마음 쉼터가 됐던 다다름 필름 파티. 이를 계기로 모두의 개성이 존중되고 모두의 아름다움이 당연해지는 사회가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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