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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 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무대에 옮기다

기사승인 2017.11.26  0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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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형 연극·뮤지컬 연출 인터뷰

연극·뮤지컬 연출가는 극본의 텍스트를 해석해 무대를 구성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지휘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여기, 뚜렷한 개성과 몰입도 높은 연출로 많은 관객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연출가가 있다. ‘한밤중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벙커 트릴로지’ ‘로기수’ ‘모범생들’ ‘아가사’ ‘옥탑방 고양이’ 등 굵직한 작품을 맡아오며 관객들 사이에서 ‘믿고 보는 탱연출’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김태형 연출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가 연출한 뮤지컬 ‘팬레터’가 공연되고 있는 동숭아트홀 근처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김태형 연출은 “밀리고 싶지 않다는 욕심 때문에 반은 도피이자 반은 회의로 연극에 입문했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도피에서 확신까지

연극에 대한 김태형 연출가의 관심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됐다. 단순히 흥미로워 보여 들어간 연극 동아리에서 그는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큰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한다. 김태형 연출은 “사람들과 하나의 공연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고 연극 동아리에서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무대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타인과 공유했던 경험은 그가 계속해서 연극 동아리를 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이전엔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예술 활동을 해도 이를 통해 남들에게 인정받거나 예술적인 가치를 공유해 본 경험이 없었다”며 “하지만 연극을 할 땐 작품으로 관객을 감동하게 했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웠고, 이것이 내 최초의 예술적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김태형 연출은 처음엔 도피처를 찾기 위해 연출의 길에 들어섰다고 고백한다. 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계속해서 주변 인물들로부터 넘을 수 없는 벽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이공계 학생들과 비교해 자신의 강점을 찾기 시작했고, 일반적으로 이공계 학생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인문학과 예술 분야를 공부했다. 김태형 연출은 KAIST에 진학한 이후에도 학교 공부보다는 연극 동아리 활동에 더 열중했다. 그러던 중 동아리 선배를 통해 전문 예술가를 양성한다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의 존재를 알게 된 그는 자신과 맞지 않는 생활을 더는 견디기 힘들다는 판단 하에 KAIST를 중퇴하고 한예종에 진학했다. 다른 친구들로부터 뒤처지고 싶지 않아 시작했던 연극으로의 도피가 오히려 열정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그렇게 ‘학생 김태형’은 연극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해나가며 ‘연출가 김태형’으로서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한예종에서 ‘연극 영화의 이해’ 수업을 듣던 중 브레히트*에 대해 공부하면서 연출을 업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공연을 통해 관객의 이성적 각성과 분노를 촉구해 혁명을 일으키는 것을 꿈꿨던 브레히트의 철학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연극이 개인의 감상적 취미를 넘어 사회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다양한 형식 속에서 변주되는 인간의 양면성

김태형 연출은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여기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꿈을 버리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작품에 반영한다. 연출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느낀 양면적인 감정을 작품에 녹여내고자 한 것이다. 이어 그는 이런 양면적 감정이 자신뿐만 아닌 인간 모두의 보편적 감정일 것이라 판단했다. 그는 모든 인간은 상황에 따라 다른 반응과 행동을 보이는 존재이기 때문에 단면적으론 해석될 수 없다고 말했다.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야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으면서도 강렬한 드라마의 특색이 드러나는 존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작품에 인간의 양면성을 담아내려 노력한다. 한쪽은 외부의 압력과 이기적인 욕망을 마주했을 때 무책임하고 사악한 선택을 하는 모습이고, 다른 한쪽은 시스템과 이기심의 압박 속에서 그 상황을 이겨내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연극 ‘벙커 트릴로지’의 한 작품인 ‘맥베스’에서 ‘마크’는 권태에 빠진 권력을 비판해왔지만 정작 자신이 권력자가 되자 자신이 비판하던 상사들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인물이다. 뮤지컬 ‘로기수’의 ‘기수’ 또한 발목이 잘려나가는 악몽을 꿀 정도로 큰 공포를 갖고 있으면서도 포로 수용소라는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탭댄스를 추며 두려움에 대한 양면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증을 갖고 그들의 교활한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이를 딛고 나아갈 희망이 있음을 표현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양면성을 캐릭터에 녹여내려 하는 만큼 김태형 연출이 배우들에게 디렉팅을 하는 방식에도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필요하다면 참고 혐오 받아라’ 와 ‘프러포즈하듯이 연기하라’가 그것이다. 우선 ‘필요하다면 참고 혐오 받아라’에 대해 그는 “배우가 모든 감정을 누려버리면 관객이 가져갈 몫이 적어진다”며 “관객들로부터 ‘울 권리’를 획득할 때까지, ‘이제 넌 좀 울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때까지 감정을 참아야 한다”고 자신이 조연출 시절 배웠던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감정에 매몰되는 것을 지양하고 관객에게 온전히 인물의 감정이 전달되게끔 인물의 감정을 만들어나가라는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배우가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캐릭터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이성적으로 보여줄 때야 관객이 그 캐릭터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김태형 연출은 ‘프러포즈를 하는 순간’과 관련해선 앞선 설명과는 전혀 다른 디렉팅 방식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프러포즈를 하는 순간’을 ‘속살을 드러내는 순간’이라고도 표현한다. 그가 말하는 속살이란 일상 속에선 좀처럼 타인에게 드러내지 않는 인간 내면의 깊숙한 속마음이다. 그런 내면의 감정이 폭발해 진심과 마주하는 순간을 관객과 공유하라는 것이 그의 의도다. 그는 “사람과 사람의 진심이 만나 서로의 ‘속살’을 드러내는 순간은 인생에 몇 번 없는 경험”이라며 “자신은 하지 못할 용기를 낼 때 보는 사람의 마음이 동하면서 배우에게 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험적인 시도로 채워진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인간의 다층적인 면모를 다루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엿볼수 있다. 국내 최초로 시도된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든 뮤지컬’, 관객이 직접 참여하고 이동하며 관람하는 공연인 ‘씨어터 RPG: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공간의 협소함 자체를 활용해 극한의 충격과 공포를 표현한 ‘벙커 트릴로지’, 무대의 중심에 샤막*을 사용해 실제 사건이 일어난 장면과 인물의 머릿속에 재현되는 장면을 동시에 겹쳐 보인 ‘베헤모스’ 등 그는 10년간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그는 “비디오 키즈로 자라 이전 세대보다 영상물의 기법을 많이 참고하기 때문에 새롭고 도전적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 같다”며 “내 이후 세대의 연출은 또 다른 기법을 차용해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쾌감과 교감으로 달려온 10년

김태형 연출은 작품을 통한 사람들과의 교감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는 “힘들게 만들어 올린 공연에 담긴 메세지가 온전히 관객에게 전해졌을 때, 그리고 그 피드백을 받을 때 ‘인간이 이걸 위해 사는 건 아닐까’ 하며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가 계속해서 연출가로 살아가는 건 이런 ‘마법 같은 순간’ 때문이다. 그는 “연습실에서 고민하던 장면이 무대에서 ‘짠’하고 만들어질 때가 있다”며 “그 순간 그곳에 있는 모두가 장면에 몰입하게 되는데, 그때만의 쾌감과 희열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작업 과정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여러 극적 요소가 맞물리며 기대한 무대가 꾸려질 때 연출로서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는 “무대 위아래의 에너지가 공연장 가득 공유되는 그 순간이 좋아 이 힘든 일을 계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대학로 간판 연출가’인 그에게도 좌절의 순간들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연출했던 모든 작품이 소중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작품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김태형 연출은 “공연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관객들이 어떤 것에 관심을 두고 좋아해 주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공연을 보며 행복해하고 생각의 변화를 갖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든다는 그는 “간혹 내 의도와는 달리 관객들에게 공연이 갖는 의미가 닿지 못해 그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있다”고 관객과의 교감이 좌절될 때의 씁쓸함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관객들의 기대와 사랑의 크기에 비해 내 연출이 부족했던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 것을 다짐한다”고 덧붙였다.

쉼 없이 달려온 10년 차 연극·뮤지컬 연출가 김태형의 꿈은 오랫동안 연출 일을 하며 사는 것이지만, 그는 재미와 무관하게 오래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무대를 꾸리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늘 그래왔듯이 지치지 않고 치열하게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어떤 형식이더라도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며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오래 먹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2018년에도 그는 계속해서 대학로의 연출가로 살아간다. 그는 12월 19일 개막하는 ‘더 헬멧’이라는 연극을 시작으로 신작과 재공연 작품들을 준비하고 있다. 김태형 연출은 “자기 학대와 자기 연민의 굴레에 빠지는 마음으로 공연을 만든다”며 “관객들이 이런 감정들을 겪으면서 삶의 이유를 찾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시간이 오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때때로 자기 자신이 너무 미워질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으로 살아가고 싶을 때,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의 작품을 만나러 가는 것은 어떨까.

*브레히트: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낯설게 하기’등의 극작 이론을 도입했다.
*샤막: 반투명의 망사막으로 조명과 영사장치를 통해 연출효과를 낼 수 있는 무대 장치


황지연 기자 ellie0519@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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