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운중(자유전공학부·14)

대학 와서 딴따라질 하느라고 시간을 보냈다. 메탈리카도 좋아했고, AC/DC도 좋아했다. 학과 밴드는 동료들이 음악엔 영 애착이 없어서 따로 밴드를 구했다. 나는 기타도 쳤고 노래도 불렀다. 9살씩 차이나는 선배들과 메탈 밴드를 만들었다. 주로 하드락을 했다. 스키드 로우나 레드 제플린을 커버했다. 반년 정도 하다가 형들은 취직하거나, 공부에 몰두하거나, 다른 동아리에 전념을 했다. 나는 아직 젊었고, 그래서 밴드를 다시 만들었다. 예닐곱 개의 공연에 서고, 우리는 직장으로, 학업으로, 그리고 학생 운동으로 또 갈라졌다. 누군가는 분당의 직장으로, 누군가는 본과 학업을 위해서 혜화로, 그리고 나는 깃발을 들고 행정관 앞에다 친 천막 안으로 향했다.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술을 마시면 어떨까, 하는 공상이 들었다.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그때 그 노래 말이다. 그러나 가을은 점점 빨리도 다가오고, 나는 한 살 한 살 또 먹게 됐다. 동기들은 슬슬 내년부터 학교를 떠나기 시작한다. 아무도 모여 앉는 자리를 말하지 않았다. 천막 안에서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컵라면에 물을 받으러 가는 나를 보고 황급히 자리를 옮기던 친구가 기억난다. 그는 1학년 때 내가 자주 주정을 부려도 집을 내어 주던 친구였다. 라디오헤드는 그럴 때의 마음을 잘 달래줬다. 라디오헤드를 듣고 있을 때 우리는 둘러앉지 않아도 둘러앉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잘 알고 있다. 가슴 뜨거운 날은 반드시 우리가 살을 맞대고 서로에 부대끼면서 술 한 잔, 두 잔 따르는 날임을. 같이 어깨동무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그때 그 노래 말이다. 코드라곤 달랑 세 개라서 누구든 통기타를 뺏어서 칠 수가 있고, 후렴구까지 우물우물거리다가 가슴 터지도록 후렴을 따라 부를 수 있는 그런 노래. 낄낄거리면서 ‘락 윌 네버 다이’를 외칠 그런 날임을. 물론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아마 우리 젊을 때에 그 날은 오지 않으리라.

당선된 작품은 저의 친구들, 동지들, 그리고 더 이상 동지라 부를 수 없는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초라한 이야기에 말을 보태주신 분들에게 모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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