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찬(자유전공학부·17)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찰스 디킨스가 소설 『두 도시 이야기』를 시작하며 쓴 이 문장을 때때로 곱씹어본다. 상반되는 표현들이 어떻게 동시에, 하지만 절묘하게 현실을 그려낼 수 있는지. 어떤 명제 p에 대해서 항상 p이거나 p가 아니라는 논리학의 이가원리를 얼마 전 수업에서 배웠었는데, 논리와 현실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못하는 듯하다.

논리를 가장한 역설이 팽배한 현실에서, 역설적 현실 이면에도 작동하는 논리를 보고 싶었다. 교육의 공간이 공포와 죽음의 공간으로 돌변한 것, 어떤 존재가 스스로 존재하기를 그치는 것, 그리고 이러한 비극적 역설을 예술의 형태로 재현해 내는 것. 이 모든 역설들을 담고 있는 <엘리펀트>는 나에게 팝콘을 먹으며 볼 가벼운 영화가 아니었다.

우리의 현실 속에 영화가 존재하지만, 가끔은 영화 속 또 다른 현실이 더욱 분명히 자리하고 있다. 영화의 껍질들을 벗겨내며 감춰진 현실을 찾으려는 시도에서 평론을 하게 됐다. 평론이라는 수식어가 달리기조차 부족한 글임이 틀림없지만, 글을 통해 나와 독자가 영화 속 역설적 현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했길 바라며 겸허히 상을 받아들인다.

나는 기뻐하고, 영화도 끝이 나는데, 일상 속 웅크린 비극의 숨결은 멈출 줄 모르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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