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권고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서울대도 관련 협의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기간제 직원을 대상으로 한 ‘정규직 전환 심의 위원회’와 용역업체 파견 노동자 문제를 다룰 ‘노사 및 전문가 협의회’가 구성될 예정이다. 또한 28일(화)부터는 직고용 및 정규직 전환을 위한 운영위원회 회의가 열릴 것이다.

1997년 IMF 구제 금융을 받게 된 것을 기화로 한국 사회에 고용유연성이라는 미명 아래 비정규직 고용과 파견 근로제가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서울대의 여러 학내 기관들에선 다양한 형태의 기간제 및 계약직 직원 채용이 증가했고 청소, 경비, 셔틀 버스 운전 등의 업무는 하청을 통한 파견 근로자들이 담당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노사문제들이 대두됐으며 파업, 부당해고, 본부 및 총장실 점거 등등의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해 왔다.

불필요한 예산을 줄여서 교육과 연구 예산을 더 확충할 수 있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대학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아니다. 대학이 사회적 흐름에 편승해 인건비를 줄여서 예산을 확보하는 방식이 옳은지에 대해선 깊은 고민이 있었어야 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실시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대학이 먼저 나서서 고민과 해결책을 모색했어야 하는 일이다. 비록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이제라도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기구들이 만들어지고 대안이 마련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수십 년 간 진행된 일을 단시간에 되돌리기는 어렵고 설사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졸속 환원은 또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본부는 다양하고 내실있는 논의를 통해 학내의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현재 서울대에는 기간제 직원, 비학생조교 외에 청소·경비, 기계·전기, 셔틀 버스 운전 등을 담당하는 다양한 직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본부는 직종별 이해당사자들의 관계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노동자의 처우 개선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학교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의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정규직 전환 협의회의 논의 대상에는 시간 강사, 강의전담 교원, 비정규직 연구원 등에 대한 논의는 빠져 있다. 따라서 학내 비정규직의 전반적인 처우 개선이라는 틀에서 이들 또한 포용할 수 있는 포괄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10여 년 전 국립대들이 앞장서 시간강사 수당을 대폭 인상함으로써 강사들의 처우 개선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10년 가까이 답보 상태인 강사료, 강의전담 교원의 급여 인상 등을 서울대가 앞장서 단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전면에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의 바람이 서울대에도 불고 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외면당했던 이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본부와 이해당사자들은 제대로 된 대화와 협의를 통해 각 직종에 맞는 전환 방식과 개선 방안을 현명하게 결정해 나가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