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백수린 소설가를 만나다

고생해서 하나 둘 풀어놓은 이야기들이 묶여 책으로 나올 때 얼마나 기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뛴다. 하지만 백수린 작가는 “등단했을 때 느꼈던 기쁜 감정이 오래지 않아 겁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첫 소설집 『폴링 인 폴』이 출간됐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슬픔과 무서움이 엄습했어요”라며 “모든 것이 벌거벗겨진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그는 “쓰다 막힌 이야기가 뚫릴 때의 희열이 너무 커요”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즐겁다고 표현했다. 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해 논하는 그는 등단부터 차분하고 안정감 있는 이야기 전개로 주목 받았다. 하지만 차분한 서술과는 달리 그의 작품 속에서 흔들리는 자아는 쉽게 소외되고 타인과의 소통은 흔히 거짓되기만 하다.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도 작품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내며 거친 세계를 풀어나가는 그녀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누가 이방인인가?

백수린 작가는 이방인을 “‘우리’라는 환상 바깥에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스스로를 있으면 안 될 곳에 놓인 이방인으로 여겼다. 그는 마르그리트 뒤라스, 알베르 카뮈를 좋아한다. 모두 자신이 있는 곳에서 정체성을 온전히 찾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런 그의 이방인적 감수성은 작품 곳곳에 배어 나온다.

자기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외로운 일은 없어

- 「여름의 정오」 중

백수린 작가는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는 30대 미혼 여성이다. 그는 “사회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해 스스로가 더욱 변두리가 돼가며 내 이방인적 정체성이 더욱 공고해져간다”고 말했다.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협소한 틀이 아쉽다는 그의 소설에는 외국인과 외국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범주가 너무 협소해요”라며 소설로 “‘우리’의 외연을 넓혀 이방인적 정체성을 해소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에게서는 여행자의 냄새가 났다. 이곳에 속하지 않는 사람의 냄새

- 「시차」 중

그의 작품을 보면 이번엔 어떤 종류의 이방인이 나올까 기대하게 된다. 그는 인물을 설정할 때부터 어떻게 이방성을 드러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다. 백수린 작가는 「중국인 할머니」의 인물을 어떻게 설정했냐는 질문에 “화교라는 정체성에 더해 세대 중 가장 변두리라고 할 수 있는 ‘할머니’를 통해 이방인을 드러냈어요”라고 답했다. 낯선 나라에 간 외국인(「스트로베리 필드」), ‘감자’를 개로 인식하게 된 사람(「감자의 실종」), 정신망상증에 걸려 스타가 자신의 남편이라 착각하는 여자(「밤의 수족관」) 모두 사회에서는 조금씩, 때로는 많이 벗어난 사람들이다.

그의 작품에는 극단적인 인물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그에게 이방인은 특정되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이방인은 국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비껴가있는 사람들이에요”라며 “하지만 모두가 다르기에 모두가 비껴가고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생각에는 결국 이방인이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자타(自他)에서 발견하는 타자(他者)

백수린 작가에게는 ‘무엇이 어떻게 타자(他者化)가 되는가’라는 질문 역시 탐구대상이다. 이 때 타자화란 남을 또는 나를 낯설게 하며 서로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만드는 행위다. 첫 번째로 인물이 타자성을 발견하는 장소는 가족이다. 그는 “‘정상적인’ 가족, 부모자식과 같이 맺어진 관계가 부정적으로 보여요”라고 말했다. 그는 「시차」 「중국인 할머니」 등을 통해 가족 내에서 타자가 된 사람들을 보여준다.

다정하고, 사이좋은 오누이. 단 한번의 이별도 겪지 않았고, 상처 따위 주고받은 적 없는, 서로에게 미안함이나 죄책감 따위는 간직하지 않은 오누이.

- 「시차」 중

이모가 어렸을 적 낳아 연을 끊었던 사촌(「시차」)과 할아버지가 늘그막에 들인 새할머니(「중국인 할머니」)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다르기에 배척된다. 그는 “가족이란 ‘우리’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허용하기 위한 공동체로 생각해요”라며 늘 이방인을 만드는 ‘우리’라는 환상은 끊임없이 그 밖의 사람들을 소외시킨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는 이 공포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사라졌다가도 계속, 계속 되돌아오리라는 것을, 그러나 누구에게도 이해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 「참담한 빛」 중

그의 작품 속 인물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 안에 숨은 타자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는 “사람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어떻게 서사화하느냐로 결정된다고 생각해요”라며 “과거의 사건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사람이 바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과거를 되짚으며 낯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인물들은 때로는 사소하고 때로는 전혀 연관성 없는 계기로 과거를 떠올린다. 아버지의 입원에 당신의 첫사랑이 생각나고(「북서쪽 항구」) 비행기가 건물에 박히고 사람들이 떨어져 내릴 때 잊었던 첫사랑이 생각나는 식(「여름의 정오」)이다. 하지만 일단 머릿속에 박힌 과거는 정리되기 전까지 그들을 놓아주지 않고 사람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서야 물러난다.

일반적인 소설에서 인물들은 자신의 과거를 타인과 공유하며 위로받는다. 하지만 백수린 작가는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은 공유 되지 않아요”라며 “만일 어느 순간 서로의 고통이 이해되더라도, 이미 때는 늦고 이해의 시차가 발생해요”라고 말했다. 이때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며 다독여줄 수 있다는 생각은 빛을 잃고 만다. 그래서 그는 타인을 이해하는 순간은 항상 늦고 시차는 반복돼 사람들에게는 늘 말할 수 없는 고독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불통의 교차로, 소통의 찰나

“저는 소통이라는 행위를 믿지 않아요.” 백수린 작가는 등단작 「거짓말 연습」에서부터 줄곧 소통의 불가능성을 외쳐왔다. 그는 “우리는 서로 이야기하며 소통을 이룬다고 착각해요”라며 “언어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전제해야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통의 불가능성을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그는 외국인을 등장시켜 소통이 난감한 상황을 설정하곤 한다. 언어에서부터 불완전한 소통이 예상되는 상황에 그녀는 ‘과연 우리가 모국어로 얘기할 때는 완전한 소통이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을 역설적으로 던진다.

나는 내가 느끼는 미묘한 감정들을, 사소한 차이들을 결코 제대로 전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여기, 우리의 대화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 「거짓말 연습」 중

「거짓말 연습」의 주인공은 기숙사에 남은 다양한 국가 출신 사람들과 어설픈 불어로 서로 대화하며 진정한 소통을 느낀다. 비록 수식어도 제거된 단순한 구조의 문장 의미조차 분명하지 않은 말들이지만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로가 소통할 수 없다는 진실을 깨달았을 때 오가는 말은 그 자체로서 충실한 소통이 된다.

그의 다른 작품 「여름의 정오」에서 제기된 소통의 양상도 이와 비슷하다. 인물들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각자의 상처는 불완전한 소통이 전제된 상황에서야 명명백백히 털어놓을 수 있게 된다. ‘외국어로는 모국어로 하기 힘든 이야기도 훨씬 더 쉽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은 유창함만이 소통의 원리가 되는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백수린 작가는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통하는 이유가 뭘까요?”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이뤄지는 찰나를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백수린 작가는 “사실 인간관계를 맺는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허무주의자인 자신이 보기에는 이미 이별이 전제된 만남은 소모적인 행위로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미 없는 만남에도 의미는 있다. 그는 “이별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계에 충실하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죠”라면서도 “그 점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백수린 작가의 작품에는 늘 불가능함을 전제하면서도 아름다운 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노력이 담겨 있었다.

사진: 박성민 기자 seongmin41@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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