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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디쓴 소주, 시대를 담아내다

기사승인 2018.03.04  01: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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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 한국 희석식 소주가 걸어온 역사

신입생들은 소주를 마시며 “이렇게 쓴 술을 왜 마실까”란 질문을 던진다. 대학 신입생들에게 소주는 쉽게 익숙해지기 어려운 술이다. 고유의 향이 없는 소주는 술보다는 소독약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술로 소주를 꼽는다. 사람들은 녹색 유리병에 담긴 소주를 마시며 다른 사람과 친해지고, 기쁜 일을 축하하며, 고충을 털어놓는다. 소주는 언제부터 우리에게 이렇게 친숙한 술이 됐을까?


당신이 마시는 소주

소주에는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 두 가지가 있다. 전통 소주는 증류식으로 제조됐다. 한국에서 증류식 소주의 역사는 고려를 침략한 몽골군이 증류 기술을 전파하면서 시작됐다. 증류식 소주는 쌀로 만든 누룩을 발효시켜 밑술을 만들고, 밑술을 소줏고리에 증류하는 단식증류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반면 오늘날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소주는 증류식 소주가 아닌 희석식 소주다. 희석식 소주의 제조 공정은 크게 주정(에탄올)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된다. 주정 제조사들은 옥수수, 수수, 고구마, 타피오카 등의 재료를 발효시킨 다음 연속 증류해 순도 95% 이상의 주정을 생산한다. 이 연속증류 과정에서 재료 고유의 향이 사라진다. ‘대한주정판매’ 관계자 A씨는 “이렇게 만들어진 에탄올을 대한주정판매가 일괄 매입해 소주 제조사들에 납품한다”고 설명했다.

소주 회사는 납품된 에탄올로 소주를 제조한다. 첫 단계는 에탄올을 물에 희석시켜 도수를 낮추는 것이다. 그 다음 에탄올 특유의 냄새를 줄이는 탈취 공정이 이어진다. ‘롯데칠성음료‛ 김은수 군산공장장은 “여과 과정을 거친 원액에 액상과당이나 스테비오사이드 같은 감미료를 첨가해 맛을 조정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여과 과정을 한 번 더 거친 소주는 병에 담겨 포장돼 출하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그 술

희석식 소주는 일제 강점기 국내에 처음 도입됐다. 한반도 최초의 희석식 소주 공장은 1919년 평양에 세워진 ‘조선소주’였다. 희석식 소주의 소비는 전통적인 가양주* 문화의 붕괴와 맞물려 증가했다. ‘한국법제연구원’ 성승제 연구원은 “일제가 1916년 주세령을 시행해 가양주 양조를 전면 금지했고 주류 시장을 강력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희석식 소주는 증류식 소주를 압도하지는 않았고, 증류식 소주와 공존하는 상황이었다. 광복 이후 한국 전쟁을 거치며 많은 희석식 소주 공장들이 폐업했고 희석식 소주는 별다른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희석식 소주는 1965년 박정희 정부가 개정한 ‘양곡관리법’을 계기로 널리 퍼지게 됐다. 개정된 법률에 따라 쌀을 이용한 소주와 막걸리 양조가 전면 금지됐다. 이로써 전통적인 증류식 소주의 생산이 중지되고 그 빈자리를 희석식 소주가 채웠다. 성승제 연구원은 “당시 생산 단가가 싸고 쌀을 사용하지 않는 희석식 소주가 대량 보급됐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한 공식적인 이유는 쌀 공급의 부족이었다. ‘보릿고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당시의 전반적인 농업 생산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임정빈 교수(농경제사회학부)는 “1977년 쌀 자급이 이뤄지기 전까지 한국은 만성적인 쌀 부족 상태였다”며 “많은 양의 쌀이 필요한 증류식 소주 양조 금지는 당시로서는 당위성 있는 정책이었다”고 평가했다.

쌀 공급의 절대적인 부족이 양곡관리법 개정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희석식 소주의 대중화 뒤에는 저임금 노동력에 기반한 산업화가 있었다.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쌀값을 낮게 묶어두는 것이었다. 이른바 저임금 저곡가 정책이다. 임정빈 교수는 “1960년대 한국의 산업화는 농촌을 수탈해 값싼 식량을 노동자들에게 공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 교수는 “당시 노동자들은 임금의 대부분을 쌀과 연탄 구입에 사용했기 때문에 쌀값이 물가의 핵심이었다”며 “곡가를 낮게 유지하면 임금도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증류식 소주는 저곡가 정책과 양립할 수 없었다. 쌀로 증류식 소주를 양조하면 쌀의 수요가 증가하고 가격 역시 상대적으로 증가한다. 이는 쌀값을 낮추려던 박정희 정부의 의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증류식 소주와 쌀 막걸리 양조를 금지시키고 쌀을 사용하지 않는 희석식 소주를 보급해 쌀 가격 안정화를 도모했다. 임 교수는 “1965년의 양곡관리법 개정은 저곡가 저임금 정책을 뒷받침한 것”이라 평했다. 더불어 희석식 소주는 낮은 임금을 받던 노동자들이 싼 값에 마실 수 있던 술이었다. 1974년 소주 한 병의 가격은 100원 가량이었던 것에 반해 맥주 가격은 238원이었다. 이런 이유로 소주에는 ‘서민의 친구’라는 별명이 붙었다.

소주의 대중화에는 산업화 시기의 보호무역 정책도 기여했다. 1984년 맥주 수입개방이 이뤄지기 전까지 한국 주류업체들은 국내 시장을 경쟁 없이 장악하고 있었다. 성 연구원은 “1970년대 및 1980년대의 한국 주류 시장은 소주가 주를 이루되 맥주 소비가 조금씩 늘어나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증류주는 사실상 희석식 소주가 유일했다. 이렇게 소주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술로 거듭났다.


변화하는 시대, 변화하는 술판

희석식 소주의 위상은 1990년대 들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1977년 쌀의 자급을 이룬 이후 쌀 생산량은 1988년에 605만 톤으로 정점에 달했다. 한편 쌀 소비량은 1979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쌀이 풍족한 시대에 증류식 소주의 양조를 금지할 이유는 없었다. 임정빈 교수는 “증류식 소주 양조가 1991년부터는 암묵적으로 허용됐으며 1995년부터는 양곡관리법이 개정돼 공식적으로 허용됐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1965년 주류 시장에서 퇴장당했던 증류식 소주가 다시 등판하는 기반이 마련됐다. 증류식 소주의 출고량은 2005년 406㎘에서 2010년 717㎘, 2017년에는 1,203㎘로 꾸준히 상승 중이다.

1984년 시장 개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수입 맥주 역시 희석식 소주의 위상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주류산업협회’ 관계자 B씨는 “폭탄주로 많이 소비되는 국산 맥주가 희석식 소주의 보완재 성격을 갖는 것과 달리 수입 맥주는 희석식 소주의 대체재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2017년 식약처의 주류 소비·섭취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입 맥주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2017년 수입맥주 음주 경험은 2016년에 비해 11.6% 증가했다. 결정적으로 올해 1월에는 미국산 맥주에 대한 관세가 철폐된 데 이어 7월에는 EU 맥주에 대한 관세까지 없어질 예정이다. B씨는 “7월에 EU 맥주에 대한 관세가 폐지되면 희석식 소주 업계도 분명히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희석식 소주 업계에는 전혀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최근 두드러지는 주류 소비 경향으로는 저도주 선호가 있다. 양승룡 교수(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는 “한국인이 높아진 소득에 맞추어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기게 돼 위스키나 소주와 같은 고도주보다는 와인이나 리큐르 등의 저도주를 선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리큐르 소주의 등장이다. 리큐르 소주는 과일 맛과 향을 첨가하고 알코올 도수를 12%~16% 가량으로 상대적으로 낮춘 술이다. 리큐르 소주의 소비는 2015년 3월 22일 ‘순하리 처음처럼 유자’가 출시되면서 급속하게 늘었다. 식약처는 ‘2017년 주류 소비·섭취 실태조사’에서 ‘리큐르의 1회 평균 음주량이 2013년 2.2잔에서 2016년 6.0잔으로 증가했다’고 제시했다. 소주 업계에서도 리큐르 소주의 성장을 체감한다. 김 공장장은 “젊은 층에서 리큐르 소주의 소비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며 “미래에도 리큐르 소비는 점진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내일은 어떤 술을 마실까?

현시점에서 희석식 소주가 갑자기 몰락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임정빈 교수는 “희석식 소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 됐다”며 “고급화, 저도수 소주의 출시 등의 전략으로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고 있기 때문에 희석식 소주는 당분간 지금 위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국주류산업협회 관계자 B씨도 “1인당 희석식 소주 소비량이 소폭 감소하긴 했지만 전체 출고량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며 “희석식 소주 소비가 정체된 것은 맞지만 몰락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B씨는 “리큐르의 성장세는 작년에 크게 꺾여 희석식 소주의 위치를 위협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 리큐르의 출고량은 2016년 29,856㎘에서 2017년 13,720㎘로 감소했다. 증류식 소주의 소비 역시 증가하고 있긴 하지만, 희석식 소주를 위협하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작다. 2017년 증류식 소주의 출고량은 1,203㎘였던 반면, 희석식 소주의 출고량은 932,258㎘였다.

수입 맥주의 무관세 수입이 소주의 시장 지분에 끼칠 영향 또한 아직 미지수다. 양 교수는 “외국 주류의 수입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수입 주류와 소주의 대체탄력성*은 매우 낮은 편이기 때문에 소주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적다”고 밝혔다. 저도주 선호와 희석식 소주가 양립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희석식 소주 업체들이 저도주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추어 희석식 소주의 도수를 지속적으로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희석식 소주 업체인 ‘하이트진로’는 25도 소주가 일반적이던 1998년에 23도인 ‘참이슬’을 출시했고, 2007년에는 19.8도인 ‘참이슬 후레쉬’를 선보였다. 이후 참이슬의 도수는 계속 낮아져 현재는 17.8도에 이르고 있다. 16.9도 소주인 ‘좋은데이’도 출시됐다.

희석식 소주는 단순히 많이 팔리는 술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담아내는 술이다. 희석식 소주는 반세기 동안 빠른 성장을 보이며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술이 됐다. 양승룡 교수는 “소주는 국민의 술로 불릴 정도로 대중에게 친숙한 술”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얼굴을 찡그려가며 쓴 소주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희석식 소주 외에도 다양한 술을 접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선택지가 더욱 다양해진 내일의 술 문화를 기대해본다.

*가양주: 집집마다 고유의 방식으로 담그는 전통 술
*대체탄력성: 두 재화가 서로 대체 가능한 정도


삽화: 손지윤 기자 unoni0310@snu.kr

신동현 기자 higihah@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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