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 20일

쇼트트랙 여자 3,000m 결승전을 앞두고 취재 구역은 사진 기자들로 꽉 찼다. 경기가 시작되기 한참 전임에도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빠르게 경기장을 찾은 사진 기자들의 모습은 활기차 보였다.

자원봉사자의 하루는 길다

자원봉사자의 하루는 해도 뜨지 않은 어두운 새벽에 시작된다. 오전 근무자의 경우,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 10분에 숙소 앞에서 셔틀버스를 탄다. 약 1시간을 달려 근무지에 도착하면 체크인을 하고 아침 식사를 한다.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과 피겨 스케이팅 경기가 운영되는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일하게 된 기자는 ‘PRS 부서’(Press Venue)의 ‘베뉴 포토 어시스턴트’(Venue Photo Assistant)로서 경기장을 찾아오는 사진 기자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PRS 부서의 자원봉사자는 경기 시작 시간인 오전 9시 전까지 경기장 외부에 위치한 ‘베뉴 미디어 센터’(Venue Media Center, VMC)에서 대기한 후 본격적인 근무를 시작한다. VMC에서 일하게 되는 경우, 개인 물품 보관함을 대여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진 기자들에게 열쇠를 빌려주거나 ‘필드 오브 플레이’(Field of Play)에서 사진을 찍고자 하는 기자들의 출입 카드인 ‘AD카드’(Accreditation Card)를 관리하게 된다. 반면 경기장 내부에서 근무하는 자원봉사자들은 VMC에서 취재 준비를 하고 있는 기자들을 포토존으로 안내한다. 그날의 업무가 다 끝나 셔틀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면 자원봉사자의 기나긴 일과는 마무리된다. 이렇게 기자는 20일간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자원봉사자로 업무를 소화해갔다.

밤이 늦었음에도 셔틀버스가 예정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자원봉사자들이 오랜 기간 추위에 떨어야만 했다.
VMC에서 취재를 준비하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이다.

눈부신 아이스링크 뒤엔 고단한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

개막식 3일 전인 2월 6일 새벽. 기자는 본격적인 근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자원봉사자 유니폼을 수령하기 위해 평창으로 향했다. 평창에 위치한 진부역에 내리자마자 30분 동안 셔틀버스를 타고 ‘평창 유니폼 배부 및 메인 등록 센터’로 이동했다. 이른 아침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유니폼을 받기 위해 모인 자원봉사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10시 즈음 자원봉사자에게 제공되는 모든 물품을 받았지만 속초에 위치한 숙소로 가는 셔틀버스는 오후 1시가 돼서야 도착했다. 많은 사람이 몰릴 것을 고려해 담당 매니저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이른 시간에 유니폼 배부 및 메인 등록 센터로 올 것을 당부했으나, 정작 셔틀버스는 그에 맞게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마땅히 앉아 있을 곳도, 몸을 녹일 곳도 마련되지 않아 자원봉사자들은 추위에 떨며 두세 시간 동안 셔틀버스를 기다려야만 했다.

2월 9일, 전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이 시작됐다. 그런데 그 뒤엔 자원봉사자들의 말 못 할 고충도 있었다. VMC엔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휴게공간과 간식이 마련돼 있지만 경기장 내에서 일하게 될 경우엔 식사 시간을 제외한 7~8시간 동안 기자석 근처에서 계속 서 있어야 했다. 근무 교대가 이뤄져 조금이나마 휴식을 취할 여유가 있었던 부서도 있었지만, 기자가 속해 있었던 부서는 VMC에서 앉아 일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자원봉사자가 휴식할 시간이 없었다. 심지어 자원봉사자들에게 제공된 부츠는 신발 크기가 작고 밑창이 딱딱해 오랜 기간 서 있는 데에 부적합했다. 이 때문에 근무가 끝나면 다리를 절뚝거리며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자원봉사자 임혜민 씨(20)는 “다리가 너무 아파 짧은 정빙(스케이트장 얼음의 표면을 고르게 하는 일) 시간에 빈 관중석에 잠시 앉아있다가도 경기가 시작되면 다시 긴 시간 동안 서 있어야 했다”며 “근무 이후 숙소에 돌아가면 계속 다리를 주무르며 휴식해야 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설상가상으로 셔틀버스 운영 체계에도 문제가 많았다. 강원도에 2만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을 수용할 만한 공간이 없다는 점은 이미 자원봉사자에게 사전 공지된 바 있었다. 여기에 동의한 대부분의 자원봉사자는 속초, 양양, 고성 등 자신의 근무지인 강릉과 다소 먼 곳으로 숙소를 배정받았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 올림픽 기간 중 셔틀버스가 운영됐고, 기자와 더불어 속초에 숙소를 둔 자원봉사자들은 1시간 동안 셔틀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버스가 예정된 시간에 오지 않아 1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추위에 떨며 3시간 반 동안 셔틀버스를 기다리기도 했다. 셔틀버스를 타지 않으면 사비를 들여 시외버스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고 시외버스를 타기엔 셔틀버스가 곧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원봉사자들은 이도 저도 못 한 채 표류하게 된 것이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자원봉사자 이지은 씨(23)는 “어디에 연락해야 할지 몰라 부서 매니저에게 연락했지만 그 이후에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며 “부서 간 소통조차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모습이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강릉 하키 센터’에서 근무했던 구현모 씨(21)는 “아이스 아레나를 출발해 하키 센터를 경유하는 셔틀버스가 이미 꽉 차 버려 하키 센터엔 셔틀버스가 오지도 않았고, 결국 예정된 시간보다 더 기다려야 했다”며 “셔틀버스 운영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기장 밖에서도 공유된 올림픽 정신

‘강릉 올림픽 파크’에선 올림픽 파트너사(社)들이 부스를 열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예를 들어 도쿄 2020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응원하는 부스에선 도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코카콜라 부스에선 거대한 콜라 자판기에 동전 모형을 넣으면 무료로 콜라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각양각색의 이벤트를 통해 회사에서 만든 배지, 일명 ‘핀’(pin)을 무료로 얻을 수 있다. 행사에 참여하는 방법 외에도 자원봉사자들은 근무 도중 각국의 단체나 언론 매체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자원봉사자들에게 ‘수고한다’는 의미로 핀을 받을 수 있다. 기자는 VMC에서 근무하면서 「요미우리신문」 「로이터」 「뉴욕 타임스」 등의 언론사 기자들에게 핀을 받기도 했다. 한 번은 기자가 경기장 내에서 어느 사진 기자에게 퇴장할 것을 부탁했지만, 이후 이것이 기자의 실수였음을 깨닫고 정중히 사과하자 괜찮다는 뜻으로 그 사진 기자에게 핀을 받기도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이 모은 핀을 AD카드 목걸이 줄에 달고 다니게 된다. 핀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그 무게 탓에 목이 점점 아파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자원봉사자들은 종종 ‘핀 트레이딩’(pin trading)을 위해 접근하는 사람을 마주치려 목걸이를 벗지 않는다. 또한 올림픽 파크 한켠에선 길바닥에 핀을 모아 놓고 핀 트레이딩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최국 사람들에겐 예의를 갖추기 위해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의 희귀하고 좋은 핀을 상대방의 핀과 교환해주기도 한다.

핀 트레이딩에 녹아든 문화는 올림픽 정신과 닮았다. 자칫 경쟁만이 강조될 수 있는 올림픽의 현장에서 핀을 주고받으며 처음 만난 사람과 웃음으로 대화할 수 있었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정신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쉽게도 직접 핀 트레이딩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기자는 핀 트레이더의 사진을 찍어주는 대신 작고 예쁜 핀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핀을 하나씩 모으다 보면 어느 순간 핀으로 가득 찬 화려한 목걸이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기자는 유식일 이른 아침에 올림픽 파트를 방문할 만큼 핀 모으기에 열정적이었다. 가장 받기 어렵다는 노스페이스 핀의 경우,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2시간 간격으로 80개의 핀만을 제공하는데 이미 이벤트 한 시간 저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다행이 기자는 핀을 얻는데 성공했고, 코카콜라, 알리바바 등 다른 올림픽 파트너사의 부스를 빠르게 누볐다.

25일 피겨 갈라쇼를 마지막으로 자원봉사자로서의 근무가 마무리됐다. 폐막 직전까지 쏟아졌던 여러 우려 속에서도 올림픽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피겨 스케이팅 경기에선 아름다운 선율에 자신만의 개성을 녹여냈고, 쇼트트랙 경기에선 아슬아슬한 몸싸움 끝에 값진 결과를 만들어냈다. 역사적인 장면 속에선 국적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졌고 온 경기장을 울렸던 함성엔 자원봉사자들의 노력도 함께 깃들어 있었다. 기록적 한파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겨울보다 뜨거웠던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자원봉사자로 몸담았던 20일은 모든 자원봉사자에게 다시는 없을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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