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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의 바다 위로 짜릿한 즐거움을 낚아올리다

기사승인 2018.03.11  06: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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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 박진철 낚시 프로를 만나다

넘실거리는 수면 위로 찌를 드리우자. 긴 기다림 끝에 찌가 흔들리면 짜릿한 입질이 손끝까지 전해진다. 일생일대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물고기와 그런 물고기를 잡고자 하는 낚시꾼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이 짧은 눈치 게임에서 승리를 거둔 낚시꾼은 그 순간 이뤄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낀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낚시의 매력에 푹 빠져 한국 낚시의 명인이 된 사람이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낚시 프로 박진철 씨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제22회 2018 한국국제낚시박람회’에서 릴을 들고 환히 웃어보이는 박진철 낚시 프로를 만날 수 있었다.

낚시대에 인생을 걸다

9살의 어린 나이에 낚싯대를 잡았던 것은 박진철 프로에게 퍽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향이 부산인 그에겐 동네 형이 만들어준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집 근처의 자그마한 연못에 가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그때 볼펜 크기의 붕어를 잡았던 경험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민물낚시를 하면서 느꼈던 재미는 더 넓은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져 중학생이 된 그를 바다로 향하게 했다. 박 프로는 “집에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만 이동하면 바로 부산 앞바다가 있었다”며 “연못보다 규모가 큰 바다에서 즐겼던 낚시는 말할 수 없이 즐거웠고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바다낚시 명인을 탄생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월척을 낚는 그 순간이 즐거웠던 박 프로는 점차 낚시 생활에 몰두했다. 1994년부터 그는 ‘바낙스’ 등 각종 조구업체에서 개최한 낚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이같은 대회에 꾸준히 출전하며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또한 박 프로는 낚시 대회에서 받은 우수한 성적과 낚시 관련 행사의 출석 점수를 합산한 결과 높은 점수를 받아 마침내 2005년 ‘한국프로낚시연맹’ 명인으로 지명됐다. 오랜 시간 갯바위에서 던진 수많은 ‘밑밥’이 그를 낚시인이 인정하는 명인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한 것이다. 박 프로는 “많은 낚시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자 그때 스스로의 낚시 실력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 과정에서 낚시를 더 이상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삼을 것을 결심했다”고 웃어 보였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지금 그는 여전히 그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손맛’의 즐거움을 공유하다

뛰어난 낚시 실력으로 명성을 얻은 박진철 프로는 낚시의 전문화와 대중화를 위해 자신만의 활동을 시작했다. 우선 박 프로는 낚시 상품의 제작에 집중했다. 박 프로는 2006년 한국인 최초로 일본 최고의 조구업체인 ‘시마노’의 공식 ‘인스트럭터’로 지명돼 지금까지도 그 활동을 이어오는 중이다. 자신만의 경험을 녹여 상품의 기획과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인스트럭터로서 그는 시마노 대표로 낚시 대회에 참가하거나 행사를 진행한다. 박 프로는 “낚시 대회 출전과 낚시 방송 출연으로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을 당시 일본 유명 업체에 의해 인스트럭터로 지명됐다”며 “자국 낚시인만을 인스트럭터로 인정하는 시마노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은 큰 영광”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박진철 프로는 해외 업체에서 활동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2008년엔 한국에서 자신만의 낚시 상품 브랜드인 ‘아티누스’를 설립했다. 현재 아티누스는 일본,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상품을 수출할 정도로 성장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도 피싱아웃도어를 디자인해왔다는 그는 “한국 조구업체의 상품이 일본 상품의 질과 판매량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뒤처져 있던 상황이 아쉬웠다”며 “한국을 대표하는 낚시인으로서 한국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고 아티누스를 설립한 이유를 설명했다.

낚시계에서 박 프로의 입지는 굳어져갔고 이는 박 프로를 낚시 강연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1999년 낚시 방송사 ‘FTV’가 창립되면서 그는 ‘바다낚시교실’ 등 낚시 관련 방송을 진행했고, 2000년대 초반부터는 방송사 이외의 낚시 관련 단체에서도 강연을 위해 그를 찾았다. 그는 “어느 순간이든지 청중이 강연에서 적극적으로 질문해주면 괜히 뿌듯한 느낌이 든다”며 “낚시 강연을 하면서 더 많은 사람과 기술에 대해 고민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박 프로는 인터넷을 통해 개인 홈페이지 ‘박가’에 ‘릴 찌낚시’의 개념과 기본 원리에 대한 강의를 게시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바다에서 본인이 직접 낚시하는 모습이 담긴 ‘박가의 패’라는 80회 분량의 영상을 촬영해 낚시인들에게 보다 실전적인 정보를 전했다. 이에 대해 박 프로는 “인터넷에서 낚시인들이 올린 강연에 대한 후기를 읽다 보면 낚시뿐만 아니라 나까지 좋아해 주는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늘도 사람들과 출조에 나선다

낚시 인생 35년, 박진철 프로는 낚시만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여전히 바쁘다. 올해 그는 ‘채널A’의 예능프로그램 ‘도시 어부’에 출연하며 더 많은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또한 ‘하나투어’와 함께 대마도 낚시 여행 상품을 기획하기도 했다. 이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낚시를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한 그만의 노력이다. 박 프로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낚시 실력을 결정하는 것은 7대 3 비율의 운과 기술이라 여겨져 우스갯소리로 낚시는 ‘운칠기삼’이라 불렸었다”며 “하지만 낚시는 바다 환경과 기상, 낚시 기술 등 종합적인 지식이 필요한 고난도의 레저 스포츠”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전엔 낚시가 보통 중장년층 남성의 문화라고 여겨졌지만 기쁘게도 최근엔 SNS와 인터넷, 낚시 예능 등 여러 통로를 통해 젊은 층과 여성 사이에도 낚시 특유의 매력이 퍼진 것 같아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낚시의 대중화를 위한 여러 활동으로 바쁘지만, 박 프로는 여전히 일주일에 2번은 벵에돔을 잡기 위해 바다로 향한다. 40여 년간 낚시를 해오면서 큰 난관은 없었다는 그는 “그날의 수확량에 따라 기분의 큰 차이는 없다”며 “바다에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것을 오랜 기간 낚시를 해오며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바다에 찌를 드리운 순간엔 낚시 외엔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오로지 그 순간에 집중해 무아지경의 상태가 된다”고 웃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일본에선 60세를 낚시의 정점에 오르는 나이라고 본다”며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60세가 됐을 때, 지금보다 더 빛나는 자리에 서 있게 된다면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지 즐기는 것이 낚시의 유일한 공식이라고 말하는 박진철 프로. 그는 오늘도 갯바위로 향한다.

사진: 유철웅 기자 youtj2@snu.kr

문소연 기자 moonsy1011@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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