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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표현, 이론을 딛고 현실을 바라보다

기사승인 2018.03.11  06: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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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행사 | 정치사상 워크숍: 북 세미나 『 말이 칼이 될 때』와 유관 연구

혐오는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오라는 단어 자체를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일상적 의미로 혐오는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를 사무치게 미워한다는 강한 뜻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혐오 표현’에서의 혐오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무치게 미워하지 않더라도 혐오 표현을 하고 있을 수 있다. 이런 혐오 표현에 대해 지난 8일(목) 사회대(16동) 349호에서 홍성수 교수(숙명여대 법학과)의 『말이 칼이 될 때』를 중심으로 한 북 세미나가 열렸다. 큰 관심을 받는 주제인 만큼 많은 참가자가 몰려 여러 질문을 던졌다.

어디까지가 혐오일까?

무엇이 혐오인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문제다. 초청 강연자인 홍성수 교수는 혐오를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발언 또는 행동”으로 정의했다. 홍 교수는 혐오 표현의 조건으로 대상이 소수자여야 한다는 것과 그 표현이 실제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피해를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이어 그는 “소수자가 해당 집단에서 벗어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야 소수자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대다수가 흰 옷을 입는 집단에서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은 엄밀히 말해서 소수자가 아니다. 언제든지 흰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홍 교수의 정의에 대해 “소수자는 본인이 소수자임을 인식해야 혐오 표현의 피해자가 되는가?”와 같은 질문이 뒤따랐다. 홍성수 교수는 “자신이 소수자임을 인식하는 것은 혐오 표현을 정의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며 긍정의 의사를 밝혔다. ‘혐오’는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홍 교수는 “자신이 직접 당하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같은 집단으로 인식하는 소수자에게 불쾌감을 주는 확산성이 혐오 표현의 특징”이라며 탈모를 예시로 들었다. 탈모에 대한 희화화는 스스로를 탈모인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저 ‘남의 일’이지만, 자신이 탈모임을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직접 당하지 않아도 모욕적으로 느껴지는 혐오 표현이다. 홍 교수는 “혐오 표현이 가진 확산성 때문에 소수자에게 아프게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이심지 씨(정치외교학부 석사과정·18)는 “다수자에 대한 혐오는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홍 교수는 소수자만이 혐오 표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수자가 혐오 표현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만, 다수자 중 일부가 국지적이고 일시적으로 혐오 표현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가능하다”며 소수자의 개념은 유동적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남성도 여성이 다수인 집단에 소속되면 소수자가 될 수 있다.

한편 언어를 통해 표현되는 혐오는 물리적 폭력과는 다른 고유의 속성을 지닌다. 물리적 폭력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건장한 사람이든 병약한 사람이든 몽둥이로 맞으면 아프다는 점은 같다. 그러나 혐오 표현은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그 피해가 천차만별이다. 또 혐오 표현은 회복 가능성이 있다. 홍성수 교수는 “혐오 표현이 나타났을 때 주변 사람들이 동조하지 않고 반박하면 원래 표현의 파괴성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반면 물리적 폭행은 주변 사람의 반응과 무관하게 피해자에게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준다. 홍 교수는 이 때문에 혐오 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데 많은 난점이 따른다고 말했다. 물리적 폭행에 대한 처벌은 법적으로 정당하게 이뤄지지만, 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은 표현의 자유와 갈등을 빚곤 한다.

혐오 표현에 대한 대처, 족쇄에서 붕대로

‘혐오 표현을 규제해야 할까?’ 이 질문은 혐오 표현이 과연 해악을 끼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홍성수 교수는 “혐오 표현의 해악을 입증하려는 시도가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까진 논란이 많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데 사용하는 근거는 ‘혐오의 피라미드’다. 홍 교수는 “혐오 표현은 차별-증오 범죄-집단학살의 단계를 거쳐 더 큰 해악으로 발전한다”고 설명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증오 선동’을 규제 대상의 기준으로 삼는다. 혐오 표현이 증오를 선동해 다른 해악으로 이어지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증오를 선동하는 혐오 표현과 그렇지 않은 것을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화두가 됐다. 이에 대해 홍성수 교수는 “혐오 표현 규제에 적극적인 유럽에서도 증오 선동을 정의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인 브리짓 바르도는 ‘모로코인들과 공존하는 것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그들이 모로코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해 증오선동으로 처벌받았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모든 프랑스인이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홍 교수는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유명인사의 혐오 발언은 선별적으로 처벌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런 애매한 규제조차도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2013년에는 새누리당의 안효대 의원이 인종 및 출신지를 근거로 공연히 사람을 혐오한 자를 1년 이하 징역,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인종차별 모욕죄법안’을 발의했다. 지난 2월 13일에는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국가인권위원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해 혐오 표현에 대한 광범위한 규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홍성수 교수는 “이 법안들은 너무 광범위하고 단순해 남용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꼭 형사처벌이 아니더라도 혐오 표현을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고 덧붙였다.

혐오 표현에 대항하는 방법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국한되지 않는다. 홍성수 교수는 “혐오 표현에 맞서기 위해서는 금지와 처벌보다는 소수자에 대한 지원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한 사람에게 반박하는 상황에 주목하면서 혐오 표현의 자정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2016년 3월에 학내 성적 소수자 동아리 ‘큐이즈’의 새내기 환영 현수막이 훼손된 사건을 예로 들었다. 당시 총학생회는 현수막을 훼손한 범인을 색출하는 것에 주력하기보다는 현수막을 반창고로 복원하는 운동을 벌였다. 그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보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혐오 표현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오히려 증진시키는 방법”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홍성수 교수는 또한 차별시정기구와 같은 연성 권력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제성을 갖고 권력을 행사하는 경성 권력기구와 달리 연성 권력기구는 대화와 권고 위주로 권력을 행사한다. 그는 혐오 표현을 무조건 처벌하는 것보다는 연성 권력기구를 통해 중재 및 교육을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연성 권력기구에도 한계는 있다. 김주형 교수(정치외교학부)는 “학내 연성 권력기구인 인권센터가 혐오 표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 있지 않고 학생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홍 교수는 “한국 연성 권력기구의 문제는 권고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라며 더 강경한 방안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예를 들어 미국의 연성 권력기구는 혐오 표현을 한 사람을 직접 기소하기도 한다. 홍 교수는 “이처럼 한국의 연성 권력기구도 권고를 넘어 더 강경한 수단을 쓸 수도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혐오 표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혐오 표현 규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혐오 표현의 규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이 있고 합의된 것은 적다. 저명한 철학자인 주디스 버틀러 교수(미국 UC버클리 비교문학과)는 혐오 표현 규제에 강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소수자들이 혐오 표현을 역으로 비틀어 다수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그 이유다.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사회 전반에서 혐오 표현의 규제와 대응에 대한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사진: 정다윤 기자 dadala7@snu.kr

신동현 기자 higihah@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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