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적 성희롱, 차별 발언 여전해

학생이 직접 문제 제기 어려워

“인권 문제에 학생 참여 늘려야”

교원 인권·성평등교육 내실화 필요

이번 학기 경영대 수업을 듣는 학생 A씨는 수업 중 강사의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 강사가 수업 중 머리를 염색한 학생에게 “넌 뭐니? 병이 있니?”라고 말한 것이다. 해당 강사는 “귀걸이를 끼거나 발가락이 보이는 신발을 신으면 D학점” “곱실거리는 다리털이 눈에 띄는 것은 절대 안 된다” 등 학생들의 인격권과 학습권을 침해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이에 A씨는 “수업을 듣는 당시 굉장히 혼란스럽고 괴로웠다”고 기자에게 토로했다.

◇‘막말’하는 교수, 문제에 대해 '막' 말할 수 없는 학생=교수의 성희롱과 폭언은 지난해 사회대 H교수 사건으로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런데도 폭언, 따돌림, 행사 동원과 같은 인격권 침해부터 두발, 복장 등을 강요하는 자유권 침해, 그리고 언어적 성희롱이 공공연하게 강단 위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인권센터가 발표한 ‘201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교육연구환경 조사보고서’(2016년 인권실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인권 침해를 당했으나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응답자 중 44.9%(복수응답)는 ‘인권 침해가 공공연하게 이뤄져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특히 언어적 성희롱은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수업 중 만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 공대 수업에서는 교수가 수업에서 남학생을 지목해 ‘이 반에서 예쁜 사람 골라보라’고 지시한 뒤 지목당한 학생에게 발표를 시켰다. 당시 수업을 들었던 학생 B씨는 “수업 중간에 한 남학생이 화장실을 갔다 온다고 하자 교수님이 ‘남자는 참을 줄 알아야 여자가 좋아한다’고 말했다”며 “그 외에도 여러 농담을 빙자한 성희롱을 해 기분이 나빴던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생과 교수라는 권력 구조상 교단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에 학생들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기 힘들다. 권위주의적인 사제 관계에서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 혹은 문제를 제기했다가 학점이나 논문 지도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 학생들은 쉽사리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경영대 수업을 들었던 A씨 또한 “교수님이 권위주의적으로 인권 침해적인 기준을 요구하고, 이를 따르기 싫으면 수업에서 나가라고 말했다”며 “이전에도 교수님의 발언에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엔 바뀐 것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2016년 인권실태 조사보고서에서도 인권 침해를 당한 뒤 당사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40.7%(복수응답)가 ‘무시를 당했다’고, 26.5%(복수응답)가 ‘불이익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학생과 교수 사이, 인권 문제를 푸는 실마리는?=현재 서울대 내에선 인권센터가 학생과 교수 사이에 발생하는 인권 침해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만일 학생 스스로 교수와의 대화로 해결이 가능한 문제라고 판단한 경우, 인권센터에서는 학생에게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어떤 피해를 받았는지, 무엇을 고치길 바라는지 정리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인권센터는 “이를 바탕으로 해당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학생회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만일 대화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인권센터에 공식적인 문제 해결을 요청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규정’에 따라 인격권, 학습권, 연구권 등을 침해받거나 성희롱‧성폭력을 당한 사건이 접수되면 인권센터가 정식으로 조사에 착수하며, 조사 결과에 따라 피해 구제 및 가해자 징계가 이뤄진다.

하지만 학생들이 인권센터를 통해 학내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는 드물다. 2016년 인권실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학생들은 ‘상담 인력 부족’ ‘상담 신청자의 개인정보 유출 우려’ ‘교수 중심의 대학 사회에서 인권센터가 내릴 조치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 등으로 인권센터의 활동에 대해 불만족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의 경우 사회대 H교수에 대한 정직 3개월 징계 권고, 인권주간 보이콧 사태 등을 겪으며 학생 사회에서는 인권센터에 대한 신뢰성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교수 중심의 대학 사회에서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인권 감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인권센터가 주최한 열린 인권포럼에선 대학에서 인권센터가 독립적인 인권옹호기구로 작용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학생 참여가 논의됐다. 이에 현재 인권센터에서는 학생 사건과 관련된 심의위원회에 학생 위원이 참여하는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인권센터 김인희 전문위원은 “교수와 학생 사이의 성폭력, 인권 침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인권센터가 교수의 인권 침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학생사회가 인권센터에 제기한 비판들을 반영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교원의 인권‧성평등 교육 또한 내실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미 교원을 대상으로 한 인권‧성평등 교육에는 학생들이 문제로 지적한 인권 침해 사례를 소개하고 있지만, 교육 이수율이 낮아 교육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규정상 반드시 인권‧성평등 교육을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을 이수하지 않았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김인희 전문위원은 “현재 전체 교원의 인권‧성평등 교육 이수율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교육이 이뤄진 후에도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점검할 필요 또한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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