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
생명과학부 석·박사통합과정

과학을 글로만 배우던 어느 날, 갑자기 연구실로 출근하게 되면서 책에서는 알 수 없던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작은 연구라도 하려면 책에선 드러나지 않던 온갖 노동을 해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예컨대 나는 유전학과 유전체학을 이용해 선충과 그 진화를 연구하고 있는데, 지금도 연구실에 출근하면 일단 기르고 있는 선충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밥부터 먹이곤 한다. 유전자라도 하나 조작하려고 하면 일단 몇 주는 시간을 들여야 하고, 좀 더 복잡하게 조작하려면 짝짓기는 또 얼마나 많이 시켜야 하는지 모른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할 줄 알았건만 결국 육아와 중매에 힘을 쏟는 것이야말로 유전학자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었다.

요리라는 게 뭔지 알려면 직접 밥이라도 한 끼 차려 먹어봐야 하지 않겠나. 과학도 마찬가지라 연구실에서 한두 달이라도 시간을 보내야 생물학자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감이라도 잡을 수 있는 듯하다. 평소에 어떤 일을 하는지, 이 바닥에선 어떤 능력이 중요한지, 또 밥벌이나 취미 생활이라는 측면에선 얼마나 부합하는지 등. 책에서는 행간에서조차 찾기 어려운 정보지만 연구실에서는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각자 한마디씩은 할 수 있는 이야기들, 이를 접하고 나면 생물학에 대한 이해가 부쩍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학을 직접 해볼 순 없을까?

글로만, 또 강연으로만 과학을 접한 이들 중 일부는 분명 과학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단 열망을 품곤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다 큰 성인이 간단한 실험이라도 해볼 수 있는 공간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애초에 과학관의 숫자도 많지 않지만, 그나마도 보통은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운영될뿐이다. 과학 또한 문화라고들 말하던데 이를 체험할 수 있는 동네 문화센터가 과연 전국에 몇 개나 있겠나. 생물학을 취미로 하려면 현미경이라도 한번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고, 대장균이라도 키워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기만 갖춰두면 막상 배우는 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도, 요거 해보기가 참 힘들다. 이런 공간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면 과학이 정말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이젠 그럴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서울시립과학관에서 과학을 업으로 삼지 않거나 실험을 주업으로 하지 않는 시민을 대상으로 생물학 실험을 배울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충북대 남궁석 교수님 제안으로 참여하게 된 이곳에서 열댓 명 남짓한 이들과 함께 각종 생물의 DNA를 뽑아보고, 그 조각을 복제 및 증폭시켜 염기서열 정보를 읽어내는 일을 도왔다. 소중한 주말 중 하루를 고스란히 써가며 왜들 이렇게 고통받는 건지 쉽사리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직접 실험하고 생물학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어 정말 즐거웠다. 지갑이 도톰해지면서 마음마저 따스해진 건 물론이다.

영국 생물학자 로토(R. B. Lotto)는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벌을 연구해 그 결과를 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에 출간한 바 있다. 서울시립과학관 같은 곳이 늘어난다면 그들처럼 누구나 연구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연구가 잘 안 풀릴 땐 지긋지긋해서 꼴도 보기 싫지만, 과학은 연구 과정에서 재밌는 사실을 하나라도 찾아내면 집에 가는 내내 연구자를 즐겁게 해주는활동이다. 또한 돈을 좀 쓴다면 과학은 상당히 좋은 취미 생활이 될 수 있다. 이 즐거운 활동을 시민들과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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