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인 연구원
아시아연구소

요즘 대한민국은 연일 터지는 이른바 ‘미투폭로’로 화제다. 각종 포털사이트에는 미투폭로의 주체와 대상이 온종일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 일쑤고, 단체채팅방엔 연이어 알림음이 터지기 시작한다. 어딜 가나 사석에서는 관련 뉴스들로 이야기 보따리가 늘어지기 시작하고, ‘웬일이야’로 시작한 수다의 서막은 성추행과 성폭행의 정의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을 공유하는 장(場)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한 여성 법조인의 법조계에 만연한 성추행 폭로로 시작된 ‘미투폭로’. 우리는 이 뜨거운 감자를 어떻게 소화해야 할까.

법조계의 성추행 폭로로 시작된 ‘미투폭로’는 이제 사회 전반의 모든 분야로 퍼지기 시작했다. 특정 분야에서 미투폭로의 가해자가 새로 지목되기라도 하는 날이면 각종 뉴스 링크와 이른바 카더라 통신을 통해 쏟아지는 찌라시로 사무실 안에서도 사담이 시작된다. 그 사담은 자연스레 오전 근무가 끝난 점심 식사 자리까지, 길게는 지인들과 함께하는 저녁식사 자리까지 이어진다. 당연지사 미투폭로의 여파로 꽉 채워지는 하루다.

그런데 그 수다를 채우는 여자들과 남자들의 톤과 매너를 잘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보인다. 기다렸다는 듯이 과거 비슷한 경험담을 늘어놓는 여자들과 어딘가 모르게 잠정적 가해자인 양 움츠러든 채로 경청하는 남자들. “그 남자 너무했네”라고 적극적으로 공감의 멘트가 터져 나오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거센 비난이 쏟아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무언의 긴장감이 그 자리의 공기를 채운다.

필자는 묻고 싶다. “왜 남자들은 폭로하지 않는가? 아니 왜 할 수 없나?” 지금까지의 ‘미투폭로’의 양상을 보면 성추행의 피해자는 여성만의 영역으로 좁혀지고, 가해자는 남성의 영역으로 좁혀지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정량적 분석으로 본다면 성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 성비 사이에 보편적 비율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적’ 비율로 성급히 결론지으려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이같은 ‘우’(愚)를 범하지 않으려면 남자들 또한 폭로해야 한다. 성추행은 물론이거니와 성폭행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경험담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여자들로부터 “그 여자 너무했네”라는 분노 어린 공감과 위로를 받아보는 경험에 노출돼야 한다. 그야말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폭로할 수 있어야 지금의 ‘미투폭로’ 사태가 그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큰 용기를 내 자신의 치욕스런 성추행 폭로를 서슴치 않았던 한 여성 법조인이 진정 원했던 사회는 어떤 것이었을지 우리는 곱씹어 봐야 한다. 비록 여성들의 폭로로 시작되었지만 남성들도 폭로하는 함께 폭로하는 사회.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나도 그랬어. 너도 그런 적 있어?”라고 자연스레 물어볼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이번 ‘미투폭로’ 사태가 지향해야 하는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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