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섭 교수
철학과

교양과목에서 우리 사회의 논쟁적인 공적 이슈들에 대해, 때론 관련된 대법원 판결이나 헌법재판소 결정을 소재로 해 토론하는 수업을 진행한다. 교실에서 정치적 쟁점들을 숙고하고 토의하면 복잡한 사안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경청하는 습관을 기르며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커져 투표율도 올라간다는 연구가 있어, 앞으로도 이런 수업을 계속할 생각이다. 안락사, 낙태, 성매매, 장기매매의 처벌, 군내 동성 간 성행위, 양심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의 처벌, 군복무보상제도 등 여러 사안을 다루는데, 항상 빼놓지 않는 주제는 대학균형선발이다. 서울대의 지역균형선발전형이 시험성적을 보완해 수학능력을 올바로 평가하는데 기여하는지 등에 대해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활발히 토론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수학능력이 뛰어난 학생이 대학에 입학할 권리가 있는지 따지다 보면 대학의 사명이 무엇인가와 같은 근본적 문제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수집단 우대정책의 정당화 근거 중 다양성 논변의 정확한 내용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이 논변을 대학균형선발에 적용해 보자면, 학생들이 다양한 출신지역, 사회경제적 계층, 성별, 국적, 신체조건의 급우들과 함께, 즉 대등한 동료로서 대면하며 공부하고 교류할 때, 자연스럽게 서로의 성장배경과 경험, 관점으로부터 배우며 문화적 시야를 확장하고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공감능력은 다원적 사회에서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이행하고 여러 직역에서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민주적 사회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민주적 사회의 지도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국민들이 당면하는 문제와 생활환경을 그들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이익과 관심사를 효과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균형선발은 소수집단에 속한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해 사회 지도자로 성장하도록 도와 과소대표 문제를 완화할 뿐만 아니라,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비소수집단 학생들이 소통능력과 감수성과 같은 사회적·문화적 역량을 갖춘 리더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기회를 적극 활용해 대학에서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익숙하고 편한 친구들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 계층, 문화적 배경에서 온, 그래서 처음엔 다소 어색할 수도 있을 학우들과 만나 함께 어울려 지내며 의견을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서로 다른 배경지식과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협력하면, 어려운 과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새롭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는 데 유사한 사고를 하는 동질적 그룹보다 우월한 성과를 낸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결과로 확인된 바 있다. 다름을 변화와 혁신의 계기로 삼는 포용적이고 열린 마음은 우리 사회의 통합과 협력을 통한 발전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확장해 더 유능한 인재로 성장시킬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학생들에게 이런 조언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 설문조사에 의하면, 서울대 외국인 교수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교내 공동연구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며, 때론 사회적 고립감을 느낀다고 한다. 주변 외국인 선생님들과 교류를 통해 국제화 능력을 배양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교정에서 만나면 인사만 하고 지나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연구하고 가르치는지 묻고 대화를 시작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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