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인 교수
행정대학원

왜 지금 재벌개혁인가? 현시점에서 재벌개혁이 꼭 필요하고, 또 이를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재벌개혁 없이는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도 없으며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이런 개혁의 적기다.

재벌은 개인 또는 특정 가문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인데,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은 다음과 같은 폐해를 낳는다. 먼저 재벌 총수는 (그룹 전체 차원에서 볼 때) 적은 지분으로도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황제경영을 하면서 일감 몰아주기나 계열사 간 인수합병을 통해 사익을 편취할 수 있다.

둘째, 재벌의 과도한 수직계열화와 일감 몰아주기로 중간재 시장에서 경쟁이 사라지고, 기술탈취가 만연해 혁신의 유인이 없어지고 있다. 결국 고부가가치 중간재와 특수재를 생산하는 중소중견 기업들이 중심이 되는 산업구조로의 진화가 단절되고, 최종재를 생산하는 재벌들은 하청기업들을 후려쳐 낮은 부품단가에 의존해 가격경쟁력을 유지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이런 원하청 구조에서 중간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아질 수 없으며, 임금과 소득 양극화는 더 심화된다.

경제가 발전하고 후발 국가가 추격해 오면 가격 경쟁력 중심의 산업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최근에 한국의 중화학공업 산업들이 경쟁력을 급격히 상실하고 있는 이유다. 1990년대 이후 독일, 일본, 북유럽 국가들은 최종재 생산은 국외로 옮기고 국내 산업은 고부가가치 중간재와 특수재를 생산하는 인적자본 중심의 제조업 구조로 재편하면서, 지속가능한 성장과 재분배 정책을 달성하고 있다.

셋째, 한국 제조업의 위기는 거대 기업집단의 도산과 경제 위기를 유발할 수 있다. 현시점에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과잉투자는 1997년 경제위기 이전 수준보다 낮지 않다. 경제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할 개혁에 나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제력 집중은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경제 권력을 낳고, 이런 경제 권력의 존재는 다원주의에 기초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형해화시킨다. 경제위기와 양극화의 심화가 반복되면, 경제뿐 아니라 정치와 사회 측면에서도 한국의 미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재벌개혁을 할 수 있으며, 또 재벌개혁은 가능한 것인가? 먼저 정책 기술적 측면에서 실효성과 수용성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재벌개혁 방안이 있다. 과거 미국, 일본의 개혁 사례뿐 아니라, 2013년 이스라엘 재벌개혁 사례 그리고 수십 년 간 축적된 한국의 재벌 규제 경험으로부터 합리적인 개혁 방안을 도출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사례인 이스라엘 개혁은 우리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물론 경제 규모와 구조의 차이를 고려한 한국형 개혁방안을 도출해야 하는데 재벌 3, 4세로 세습이 진행되는 시기라는 점을 활용하면 개혁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문제는 재벌개혁의 정치적 가능성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기득권이자 민주적 통제를 벗어나 이미 경제 권력이 된 재벌을 개혁하는 것은 지난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과 삼성그룹의 세습과 관련된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 노조 파괴 공작,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 에버랜드 공시지가 문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과도한 보유 문제 등으로 재벌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관심과 공감대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제 관건은 대통령의 의지다.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시행령이나 지침의 제정 및 개정 등을 통해 개혁의 물꼬를 틀 수 있고, 결국 재벌들도 이런 큰 개혁의 흐름에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재벌개혁의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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