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새롭게 자리잡은 문화, 우리가 바라보는 ‘독립 연재’

바야흐로 1인 미디어의 시대다. 이제 개인이 자신만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고, 유통하는 일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 창작자가 자신의 글을 사람들 앞에 선보이는 조금 특별한 방식이 있다. 우선 작가는 특정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자신의 창작물을 구독할 독자를 모집한 후 구독료를 받는다. 그리고 나면 독자는 연재 주기에 맞춰 자신의 이메일로 발송되는 창작물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콘텐츠를 ‘직거래’하는 셈이다.

발신: 그가 이메일 창을 켠 이유

작가들은 구독료를 통해 수익을 내면서 자신의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독립 연재를 택했다. 지난 3월부터 ‘일간 박현우’를 연재하고 있는 박현우 씨는 “눈치 보지 않고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생존하고 싶었다”고 독립 연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그는 “원래 6~7천 명 정도의 고정 구독자가 있는 블로그와 ‘헬조선 늬우스’라는 좋아요 5.5만 규모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기도 했다”며 “그런데 이들이 생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던 중 독립 연재에 대해 알게 돼 ‘일간 박현우’를 시작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현재 페이스북 페이지 ‘노란 구름’을 통해 ‘데일리 콩트’라는 독립 연재를 진행 중인 황운중 씨(자유전공학부·14) 또한 “좁은 문단 제도 탓에 작가 지망생들의 입장에선 글로 돈을 벌 방법이 거의 없다”며 “그래서 매일 글 쓰는 훈련을 하면서도 고료를 받을 수 있는 독립 연재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독립 연재는 특정 내용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플랫폼을 통했을 때보다 작가가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룰 수 있다. 누군가가 정해준 소재나 분야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현우 씨는 타이포그래퍼를 인터뷰하며 타이포그래피의 세계를 탐구하고, 국내외 게임업계 여성 직원들과 인터뷰하며 한국 게임 업계의 젠더 균형을 살피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글을 써왔다. 그는 “‘일간 박현우’를 통해 장소, 시간, 복장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에서든 작업할 수 있다”며 “내가 어딘가에 소속돼있지 않기 때문에 직접 인터뷰이를 선정하고 인터뷰할 수 있어 더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립 연재는 외부 필진을 영입해 ‘문학 공동체’의 형태를 갖추기도 한다. 전달률이 높은 플랫폼에 입성하기 조차 힘든 데다가 창작 활동을 유지할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 창작자들이 함께 필진을 구성해 돌아가며 구독자에게 글을 발송하는 것이다. ‘데일리 콩트’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청년 예술 공동체를 꿈꿔왔다는 황운중 씨는 “고료가 확보될 수 있는 덕분에 독립 연재를 통해 항상 머릿속으로 구상해왔던 청년 작가들의 공동체를 시도해볼 수 있었다”며 “현재는 평소 문학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었던 사람들과 같이 연재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수신: 그들이 이메일 창을 켠 이유

작가가 신청자의 이메일로 직접 자신의 작품을 발송하는 만큼 독자와의 거리가 가까운 것이 독립 연재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메일을 통해 창작물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음으로써 작가와 독자 둘만의 사적인 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또 다른 독립 연재인 ‘일간 이슬아’의 김그냥 씨(가명, 32)는 “메일이라는 사적인 영역으로 글이 도착하니 나만을 위해 준비된 선물을 매일 받는 느낌”이라며 “포털을 통해 글을 읽으면 댓글과 같이 타인의 피드백을 읽게 되는데, 글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을 오롯이 혼자 곱씹을 수 있는 점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글뿐만 아니라 작가의 삶과도 함께한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다가온다”며 작가와의 사이가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고백하기도 했다. 또한 황운중 씨는 “내가 글을 보내면 답문을 보내주는 독자들이 많아 ‘데일리 콩트’가 단순한 물물교환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며 “작가와 구독자가 매일 한 편씩 글을 써내는 과정을 함께하면서 인간적인 유대감이 깊어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독립 연재라는 색다른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지만, 작가들이 계속해서 글을 쓰도록 하는 원동력이 독자에 있음은 여느 작가들과 다르지 않다. 박현우 씨는 “매달 구독하는 구독자들과 1년 치를 미리 구매하는 구독자들을 떠올리자면 ‘일간 박현우’를 멈춰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며 “오히려 이 연재 프로젝트를 더 그럴듯하게 만들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황운중 씨 또한 “위로를 받았다는 독자들의 감사 인사를 들을 때마다 계속해서 위로가 돼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구독자분들이 거꾸로 자신이 쓴 글을 보내올 때면 내 창작이 또 다른 창작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뿌듯함도 느낀다”고 고백했다.

첨부: 콘텐츠 연재에 노동의 가치를 더하다

독립 연재의 이런 매력을 아는 독자들은 구독료를 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콘텐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다는 의식이 널리 퍼져있는 것이다. 여타 디지털 콘텐츠에 비해 글은 종종 ‘돈 내고 보기 조금 아까운’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블로그나 SNS를 통해 다른 콘텐츠보다 더 손쉽게 무료로 접할 기회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간 이슬아’의 독자 김주은 씨(22)는 “독자가 직접 신청해서 본다는 점에서 플랫폼 연재와 차이가 있을 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보고 싶으면 책을 사듯이 평소 좋아하던 사람의 글을 받고 싶어서 구독하게 된 것”이라며 일정한 구독료를 지급하고 작가의 글을 메일로 받아보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김그냥 씨는 “유료로 구독해도 좋을 만큼 작가의 글솜씨가 뛰어나다”며 “사실 글의 질이나 작가가 들일 노동력에 비해서는 구독료가 싸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고 이야기했다.

작가의 입장에선 유료로 연재를 하는 것이 단지 콘텐츠 노동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순히 개인 계정에 글을 올리면서 무료 연재를 하는 것보다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박현우 씨는 “나를 믿고 내 글에 돈을 지급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니 아무래도 책임이 더 무겁다”며 “그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고, 한편으론 그 믿음을 꾸준히 유지해야 재구독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처음 독립 연재를 시작할 때 ‘노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는 황운중 씨는 “매일 마감 시간이 정해져 있어 글쓰기라는 창작 노동을 같은 시간에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며 “돈을 받았다는 책임감 덕분에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도 꾸준히 창작활동을 이어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틀에 박히지 않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어서, 요구되는 노동량에 비해 수익을 낼 수 없어서 콘텐츠 연재를 망설인다. 그렇다면 독립 연재의 1인 창작자로서, 그리고 또 다른 창작자의 구독자로서 독립 연재의 즐거움을 누려보는 것은 어떨까.

삽화: 홍해인 기자 hsea97@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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