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

통섭(統攝). ‘전체를 도맡아 다스린다’는 뜻의 이 낯선 단어는 최재천 교수(이화여대 에코과학부)의 번역을 거쳐 개념어로 재탄생했다.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여러 분야의 이론들을 묶어 공통된 하나의 설명체계를 이끌어내는 것을 ‘합일, 합치’의 뜻을 지닌 ‘Consilience’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최 교수는 이에 대응하는 번역어로 통섭을 택했다. 그가 통섭을 추구하기 위해 본교 생명과학부에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로 자리를 옮긴 것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자신을 ‘사회생물학자’라 칭하는 그는 『과학자의 서재』, 『통섭의 식탁』,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외 수십 권의 책을 집필한 베스트셀러 작가기도 하다.

◇인간은 꼭 ‘공생’해야 하는가?=이 세상에 사는 모든 생물은 짝이 있고, 누군가와 공진화를 한다. 개미와 진딧물, 벌과 꽃과 같이 흔히 배우는 공생 관계 외에도 자연에는 매우 많은 공생 관계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인간의 장 내에는 엄청나게 많은 미생물이 살며 우리의 소화와 면역작용을 돕고 있다. 만약 인간 전체 DNA를 분석한다면 미생물 DNA가 인간 DNA보다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이처럼 자연에서도 공생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손을 잡은 자가 미처 손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자를 물리치고 사는 것이 자연이다. 하지만 인간은 언젠가부터 탁월한 두뇌를 좋지 않게 사용하며 공생 관계를 파괴하고 있다. 오히려 인간만큼 지적이지 못한 다른 생물들이 자기 짝과 공생 관계를 무던히도 잘 지켜내고 있다. 오직 인간만 마치 자연으로부터 우리를 분리해낸 것으로 생각하고 홀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며 자연을 한껏 짓밟고 산다.

◇인간이 공생하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지구의 심각한 환경 문제를 지적하는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더 악화했다. 환경 파괴에 대응하는 방법은 모두가 조금만 더 불편하게 사는 것을 각오하는 것이다. 내가 조금만 더 불편하게 살면 지구가 되살아난다. 예컨대 나는 집에서 왕복 7km 정도를 걸어 다니고, 플라스틱 장바구니가 아닌 접는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닌다. 사람들이 조금 불편하고 약간 거추장스러운 삶을 살기 시작하면 지구가 건강해질 것이다.

◇[독자 질문] 여전히 ‘통섭’에 대해 긍정적인가?=통섭은 이미 시대적 흐름이다.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논의할 시기는 지났다고 본다. 현재 화제가 되는 4차 산업 혁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도 바로 연결이다. 그동안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다 연결돼 이젠 경계가 희미해졌다. 비록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통섭이 원활하지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통섭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 질문] 대학 교육에서 ‘융합’이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앞서 이야기했듯 융합이나 통섭은 대세고 시대적 흐름이다. 그렇다면 대학에서도 하는 것이 맞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학에선 융합 학과나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는데, 사실 제대로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융합(融合)의 ‘융(融)’을 한자로 보면, 다리가 셋 달린 ‘솥 력’ 자에 ‘곤충 충’이 붙어 있다. 중국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큰 솥에 넣고 고아 먹는데, 그게 끓어서 김이 솥뚜껑을 밀고 날아가는 모양이 벌레 모양이어서 만든 글자가 바로 ‘융’이다. 즉 융합은 녹아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물은 수소와 산소가 융합된 것이기 때문에 물을 마시면서 “수소 분자가 씹히네”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융합이란 것은 두 개 이상이 합쳐져 전혀 새로운 무언가로 탄생해야 한다.

◇[독자 질문]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라는 저서를 집필했다.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페미니즘이 어떤 ‘주의’(ism)로 돼 있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고 존재하는 데 여성이기에 불리함을 겪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다. 우리 사회는 성차별의 요소들을 하나씩 없애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지금 대한민국 남자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들은 전혀 행복하지 못하고 불쌍하다. 대한민국 남자는 평생 돈 버느라 애썼지만 자식과 대화도 못 하는 존재가 됐다. 대한민국 남자 중 몇 안 되는 ‘자식을 길러본 남자’로서 이야기하자면 자식을 길러보지 못하고 삶을 살았다는 건 인생을 산 게 아니다. 가장 보람 있고 가장 행복한 일을 박탈당한 것이다. 남성의 삶이 삶다운 삶이 되는 과정인데 이를 단편적으로 이해해서 마구 반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옹호해야 하는 건 남자다.

◇마지막으로 생물학자가 아니더라도 학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내가 하는 연구는 그렇게 큰 도움이 안 돼 연구비를 나라에서 잘 안 준다. 까치 따라다니고 돌고래 쫓아다닌다고 국민소득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우리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어쩌다 보니 별 볼 일 없는 연구를 하는 사람이 돼 버렸는데 그런데도 학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은 지금 세상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에 너무 휩쓸려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런 것에 휩쓸리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너무 많은 학자와 사람들이 이른바 돈의 흐름을 따라서 특정 분야에 몰리고 있다. 힘들긴 하지만 세상이 시키는 일만 하고 끝나면 너무 재미가 없다.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그래도 끝까지 해보고 죽는 게 좋지 않나. 물론 아주 잘나가진 못하고 연구비도 없고 상당히 힘들 수도 있지만 그래도 행복하고 자부심이 있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있다.

영상 제작: 신동준 기자 sdj3862@snu.kr, 임채원 취재부 차장 dora0203@snu.kr, 김용훈 기자 huni0630@snu.kr, 대학신문 snupres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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