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제를 둘러싼 갈등과 그 방향을 살피다

헌법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권리와 국가가 강제한 병역 사이에서 매년 600여 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전과자의 삶을 택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입법·사법적 조치는 부진했고, 그들은 일신의 안녕을 위해 의무를 방기한다는 비난 아래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고된 싸움에도 끝이 보이고 있다. 국제연합(UN), 인권단체 등의 권고에도 입장을 고수하던 헌법재판소가 올해 6월 28일 대체복무를 마련하지 않은 병역법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전향적인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회와 시민사회에선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사회의 변화를 지켜보며 『대학신문』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목소리와 함께 그 사회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진중한 양심, 과중한 대가

2018년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병역법 제88조에 의해 실형을 선고받는다. 2001년을 기점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통상적으로 1년 6개월의 형이 주어지고 있는데, 제도적인 한계가 이런 일률적인 선고를 강제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임재성 변호사는 “징집 영장이 발부되지 않는 최소 형량이 1년 6개월의 징역”이라며 “병역거부자가 재징집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판사들이 1년 6개월의 형을 기계적으로 선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판사로선 양심적 병역거부의 죄질이 1년 6개월의 형에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더라도 형을 깎을 수 없는 실정인 것이다. 실제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도 판사가 피고인의 상황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했으나, 징집 영장을 피하고자 피고인이 형을 더 높여 달라고 항소한 사례가 있다.

병역거부로 겪는 불이익은 형사 처분에만 그치지 않는다. 전과가 남기에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고 또한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병역거부자는 공기관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할 수 없다. 병역법 제76조 1항에 따르면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병역거부자를 공무원이나 임직원으로 임용하거나 채용할 수 없고 재직 중인 경우에는 해직해야 한다. 민간 기업의 취직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청년정치공동체 ‘너머’의 반전평화회원모임 오경택 공동대표는 “사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인생의 업으로 삼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어렵다”며 전과자에 대한 기업의 부정적 인식으로 인한 불이익을 설명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향한 사회의 시선도 그리 곱지 않다. 병역거부자 김영광 씨(서양사학과·17)는 “군대를 거부한다 말했을 때 사람들의 떨떠름한 반응에서 그들의 생각이 보인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죄질이 반사회적 범죄에 준하게 평가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 그들이 짊어진 불이익이 온당치 못하다고 지적된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최근 대체복무제가 없는 병역법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도 드러났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최소 1년 6월 이상의 징역형과 그에 따른 공무원 임용 제한 및 해직, 각종 관허업의 특허·허가·인가·면허 등의 상실, 인적사항 공개, 전과자에 대한 유·무형의 냉대와 취업 곤란 등 막대한 불이익을 감수하여야 한다”며 현 제도를 “법익의 균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이러한 고통과 불이익을 감내할 만큼 내면의 목소리가 진중하다고 주장한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 결정에서 양심을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설명했다. 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 박경환 씨는 헌법재판소의 설명에 공감한다며 “병역거부로 인한 고통과 불이익이 있더라도 배우고 생각한 바와 배치되는 행동을 했을 때 느껴지는 스스로의 무가치함은 견딜 수 없다”고 호소했다. 그들은 결코 특혜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며 마땅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싶으니 대체복무를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

양심과 안보, 두 간극 사이에서

최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대체복무제에 대한 논의가 가속되고 있다. 시민단체, 국방부, 국회의원 등 여러 주체는 적절한 대체복무 방안을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주된 쟁점은 복무 기간과 복무 내용이다. 복무 기간에 관해선 국제사회의 권고에 따라 1.5배의 이내의 복무 기간을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형평성을 위해선 2배가 옳다는 의견이 대립 중이고, 복무 내용에 관해선 ‘지뢰 제거 업무’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체복무제의 도입이 국방력 약화와 병역기피의 증가를 초래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실제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권고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 반대의견을 낸 2명의 재판관은 대체복무제의 도입이 군의 전투력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최근 대체복무 논의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바른군인권연구소’의 김영길 대표는 형평성의 확보를 강조했다. 김 대표는 “심사를 통해 병역기피자를 가려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양심을 빙자한 병역기피를 막기 위해선 현역으로 복무한 사람들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준의 대체복무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른군인권연구소’는 대체복무의 내용으로 지뢰 제거 업무와 유해 발굴 업무를 제시했고,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병역법 개정안 또한 지뢰 제거 업무를 1순위 업무로 설정했다.

다른 한 편에선 대체복무 논의가 징벌적 방향으로 흐르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난도 높은 대체복무제를 통해 병역기피를 막으려는 시도가 자칫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새로운 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임재성 변호사는 “대체복무제가 수많은 국가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만큼 누적된 국제적 경험이 있다”며 “징벌적이지 않은 온건한 대체복무제를 통해서도 국방력과 형평성 등의 공익을 훼손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민변, 군인권센터,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등이 발표한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시민사회 안(案)’은 △치매노인 돌봄 업무 △장애인 활동지원 업무 △의무소방 업무 △현역 1.5배 이내의 복무기간을 대체복무의 내용으로 제시했다.

개인과 사회의 공존

양심이라는 개인의 권리와 안보라는 공익이 충돌한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마련한다면 인권을 보호할 뿐 아니라 사회에 적잖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재성 변호사는 매년 600명의 수감자를 사회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해외에서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통해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이재승 교수(건국대 법학과)는 『공익인권법』에 게재된 ‘독일대체복무제의 최근동향’에서 독일의 대체복무가 저임금의 노동력을 사회에 제공했으며 사회적 협력, 봉사, 연대에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2000년부터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만의 병무청은 대체복무제 시행 현황에 관한 보고서에서 “대체복무제 도입 이후 대체복무가 필요한 기관과 사회 대중으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고 밝히며 9.21 대지진 재해 구역에 대체복무자가 투입돼 성과를 거둔 사례를 제시했다.

형평성 논의가 현역 복무 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대체복무제 마련을 요구한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반대의견을 낸 안창호, 조용호 재판관은 “우리나라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사람들은 엄격한 규율과 열악한 복무환경에서 각종 총기사고나 폭발물사고 등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대체복무제가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군인 등의 사기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오경택 공동대표는 “병역기피 증가에 대한 우려는 현역 복무의 고통에서 시작한다”며 “사병 인권을 향상함으로써 대체복무와 기존의 체제가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예컨대 군 복무 기간이 단축되고 사병 임금이 오르는 등 군 복무 환경이 개선된다면, 대체복무제의 난도를 지나치게 높이지 않아도 형평성을 갖춘 대체복무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재성 변호사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안보 논리로 그간 수많은 인권침해가 있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논의가 안보 논리에 의해 왜곡되지 않아야 한다는 걱정을 전했다. 민주화 이전 암울한 시기를 겪으며 한국 사회는 개인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다양한 가치를 관용할 필요를 절감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미룰 수 없는 지금, 우리 사회가 필히 존중할 개인의 권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삽화: 권민주 기자 kmj4742@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