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본부 학사과에선 ‘상대평가 의무화’, ‘성적등급 부여 비율 고정’, 그리고 ‘최종 성적 부여 대상 기준 강화’ 등의 내용이 담긴 ‘학업성적처리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 교수자의 자율에 따라 평가방식이 결정되던 관행을 깨고, 학기말 학생 수에 맞춰 A 30%, B 40%, C 이하 30%의 비율로 성적을 부여하는 엄격한 상대평가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 개정안은 이른바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을 지적하는 풍조에 경도돼, 본질과 실상을 놓치고 있다.

대학은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교육 기관”이다. 즉, 대학은 협력적 네트워크와 학문탐구과정을 기반으로 학생들의 학술적 역량을 발전시키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따라서 대학은 본질적으로 줄 세우기 식의 경쟁만이 존재해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개정안과 같은 상대평가가 적용된다면 고득점을 위한 피 말리는 경합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고, 협력과 탐구보다는 개인의 필기 능력과 암기력이 중요해진다. 잘 받아쓰고 잘 외우는 것이 제일의 가치가 되어버린 경쟁공간에서 어떻게 진정한 학술의 장이 펼쳐지고 인재가 탄생하겠는가? 불과 3년 전인 2015년 12월, EBS 〈다큐프라임 ‘서울대 A+의 조건’〉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교수자의 농담까지도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적어서 외워야만 높은 학점을 받을 수 있으며, 정작 2~3학기가 지나면 그 내용을 전부 까먹어버리는 서울대 내 고학점자들의 실상을 파헤쳤다. 이처럼 경직된 하향식 교육환경과 학습이 성적을 위한 도구가 된 현실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엄격한 상대평가의 틀까지 더해진다면, 진정한 학문탐구와 지도자적 인재양성의 가치가 유지될 수 있을까?

게다가 학습자의 학술적 역량이 아닌 성적의 분포를 바탕으로 학점 등급을 부여하는 상대평가는 평가의 공정성을 헤칠 수 있다. 이는 개정안이 지닌 문제기도 하다. A를 30%로 고정할 경우 A를 받을 수 있는 학생이 해당 등급을 받지 못하거나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해당 등급을 부여받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회대에서는 4학년 전공생들도 일부를 제외하곤 저학년 수업을 제약 없이 들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고학년이 저학년에 비해 높은 전공지식 수준을 지녔다고 가정한다면, 저학년 기준에서 충분히 A를 받을 만한 학술적 성취를 보였음에도 고학년의 ‘역(逆)수강’·재수강 등으로 상대평가 순위에서 밀려 B나 C를 받을 확률이 높다. 반대로, 학습자들이 수업에서 혹은 교수자가 A등급에 요하는 수준 만큼 학업에 임하지 않았더라도, 최종 성적의 상위 30%는 A를 부여받을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을 봤을 때 개정된 상대평가 하에서 학생들의 학술적 능력에 대한 진정성 있는 평가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서울대학교 헌장에는 ‘행복한 배움의 터전’, ‘새로운 학문적 가치 창조의 요람’, ‘실천적 지성의 전당’이 명시되어 있다. ‘학업성적처리규정 개정안’이 과연 이 가치와 목표들을 지향하는 데 적합한 조치인지 다시금 고민해봐야 한다.

최정훈

정치외교학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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