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중국 예술 ② 중국 현대 미술

중국 예술은 우리에게 가까우면서 멀다. 사람들은 보통 중국에 대해 환경 문제, 산업, 인구와 같은 ‘하드 파워’를 떠올리지 예술, 학문과 같은 ‘소프트 파워’를 떠올리지 않는다. 실제 중국의 근현대 예술은 검열, 이념, 전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많은 탄압을 받아왔다. 이로 인해 중국의 예술 하면 형식적인 경극, 변검, 혹은 천편일률적인 선전 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중국에는 전형적 이미지 외에도 기존의 관습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가는 예술가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3번에 걸쳐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의 문학, 미술과 영화 분야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에 다룰 분야는 중국 현대미술이다. 중국의 미술시장 규모는 이제 세계 1위다. 2000년대만 해도 전 세계 미술품 총액의 반을 차지하던 미국이 중국에 1위 자리를 넘긴 것도 어언 7년이 됐다. 중국 미술시장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우리는 왜 중국 미술시장이 세계 1위임에도 장샤오강 같은 중국 미술가보다 작품 가격이 낮은 피카소나 앤디 워홀이 더 친숙한 것일까. 『대학신문』에서 이러한 질문들을 중국 현대 미술사를 통해 풀어봤다.



정치와 함께 걸어온 중국 현대미술

서양에선 미술계가 다른 영역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이지만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선 그렇지 않다. 중국 미술의 형식은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경제나 미술, 교육 등 모든 영역에 사회주의 정치 논리를 적용했던 마오쩌둥 집권기(1949~1976)에는 사회주의 사실주의*만이 합법적인 미술 양식이었다. 이 시대엔 정부가 미술계를 장악해 ‘중국 미술가 협회’라는 관방미술 기관에 소속된 미술가가 그린 사실주의 형식의 작품만이 전시됐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시작하자 억압돼 있던 미술계도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특히 1982년부터 87년까지 진행된 ‘85 미술운동’으로 중국 미술은 전례 없는 변화를 겪었다. 덩샤오핑은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틀을 위협하지 않는 한 서양 문화를 자유로이 받아들였기에 80년대 중국에 서구의 다양한 사상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다양한 사상의 도입은 미술 형식의 다원화로 이어져 구원다의 ‘창문이 있는 자화상’(1985)(그림①) 같이 추상화나 초현실주의 그림이 생겨났다. 85 미술운동 당시의 예술가들은 새롭게 들어온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한 순수미술을 제작하면서 처음으로 정치체제를 넘어선 가치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보연 교수(성신여대 미술사학과)는 “이 시대의 그림은 주로 현실을 초월하는 이상을 그리고 있고, 예술가는 스스로를 이상적 세계로 민중을 이끄는 엘리트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보수적인 중앙미술기관인 ‘중국 미술가 협회’에서도 “반체제적이지만 않다면 형식의 다양성을 허용한다”며 덩샤오핑의 개방 정책에 힘을 실었다.

그림1 (사진 출처: 『중국현대미술사: 장벽을 넘어서』 미진사)

그러나 정부의 개혁·개방으로 시작된 중국의 전위미술 열기는 1989년 천안문사태를 계기로 꺾이게 됐다. 85 미술운동 당시 예술가들은 사회주의를 넘어선 항구적인 가치를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 가치가 권력과 정면충돌해 패한 것이다. 89년 이후 중국 전위미술가는 권력에 비하면 너무나도 약한 자신의 가치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이보연 교수는 “이때부터 중국 전위미술가는 80년대에 외쳐왔던 순수한 반항을 반성하면서 순수미술의 막을 내리고 현실적인 노선을 택한다”고 강조했다. ‘냉소적 사실주의’는 이상의 좌절 이후 90년대 중국에서 유행한 미술 양식 중 하나다. 냉소적 사실주의의 대표 작가인 팡리준의 ‘유화2호 시리즈-2’(1992) 속 평범한 인물(그림②)은 전형적인 중국인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는 화가 자신의 모습이다. 이처럼 80년대에 엘리트를 자처하던 예술가는 권력 앞에선 일반 시민과 다른 바 없는 자신의 모습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중국에선 반항을 시도하다 한계를 느낀 반체제 예술가와 중국 미술가 협회에서 체제에 부합하는 작품을 제작하는 보수적 예술가가 공존해왔다.

그림2 (사진 출처: 『중국현대미술사: 장벽을 넘어서』 미진사)



‘중국의 피카소’ 제백석, 피카소를 넘어서다

2011년 국가별 미술경매 낙찰총액이 발표되자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서양 미술의 영향을 받은 중국 미술이 서양 미술을 누르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것이다. 김재준 교수(국민대 국제통상학부)는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제백석 작품의 총 판매액이 피카소 작품의 판매액을 앞서자 전 세계 사람들이 제백석 작품을 비롯한 중국 미술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국 미술시장의 성장은 90년대 중국 전위미술가들의 선택으로 시작했다.

1989년 천안문사태로 좌절을 경험한 반체제 전위미술가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시장화를 선택했다. 이상만을 좇는 것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고 자신의 작품을 상품화한 것이다. 중국 정부가 반체제 미술품의 전시를 막자 전위미술가는 ‘광저우 비엔날레’를 기획해 미술품 매매를 가장한 전시를 시도했다. 이보연 교수는 “매매는 전시와 달리 중국 미술가 협회의 검열을 받을 필요가 없기에 그들은 비엔날레라는 방법을 택했고 반체제 미술품을 전시하는 데는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광저우 비엔날레를 주관한 기업에서 예술가에게 대금을 치르지 않아 전위예술가의 국내 시장화 전략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이 선택한 두 번째 전략은 서양인의 주머니를 여는 것이었다. 중국 전위미술가는 서양과 교류가 많은 홍콩을 통해 서양 세계에 중국 작품을 퍼뜨리는 데 성공했다. 이때부터 중국 미술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보연 교수는 “서양 사람들이 중국 미술에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은 중국 미술가가 던진 ‘미끼’ 덕분”이라고 말했다. 90년대 대표적인 중국 미술가 왕광이의 ‘대비판-코카콜라’(1993)(그림③)에는 이중 메시지가 담겨 있다. 깃발을 들고 있는 세 명의 프롤레타리아 밑에 코카콜라 문구가 침투해 있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에도 이젠 자본주의적 요소가 많이 섞여 있는 개방의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서양인들은 왕광이가 현재의 개방 상황에 긍정하는 반체제 미술가로 보고 관심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론 왕광이의 그림은 중국 전역으로 무섭게 퍼지고 있는 서양의 상업브랜드에 대한 경계심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그는 사실 두 메시지를 모두 담은 것이나, 서양인들은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모습에만 초점을 뒀다. 이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서양인들은 중국의 반체제적 작품 속의 미끼를 물었고 중국 미술의 세계화가 시작된 것”이라 설명했다.

그림3 (사진 출처: 『중국현대미술사: 장벽을 넘어서』 미진사)

이처럼 중국 미술의 세계화를 시작한 미술 계열은 반체제 미술이었지만, 오늘날 세계 미술시장의 상층부를 차지하는 중국 미술은 체제 미술이다. 중국의 주요 미술이 반체제 미술에서 체제 미술로 넘어간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할 무렵 전 세계적으로 중국 인권 문제가 화두로 올랐었다. 인권을 유린하는 국가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시위도 열렸다. 하지만 중국은 이를 서양 국가가 중국과 유리한 거래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카드라 여기고 모든 것을 투자 대상으로만 보는 서양 세계에 반감을 느낀다. 왕광이 같이 서양을 통해 스타가 된 예술가도 속물적인 서양 국가와 거래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고 귀국하게 된다. 이외에 서양으로 진출했던 많은 전위미술가가 베이징 올림픽 전후로 서양 세계와의 거래를 중단한다.

반체제 미술가의 공백을 채운 것은 중국의 체제 미술가였다. 개혁·개방 정책으로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 정부의 다음 목표는 문화대국이 되는 것이었다. 정부는 체제에 부합하는 미술품을 자본주의 체제를 이용해 가치를 높여나갔다. 김재준 교수는 “2000년대에 중국 미술시장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엔 당시 경제상황도 한몫했다”며 “침체했던 주식투자와 부동산투자에 비해 미술시장이 상대적으로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에 투기성 자본이 미술시장에 대거 진출했다”며 덧붙였다. 이로써 현재 전 세계 미술품 가격 상위권에 중국의 보수적 미술가의 작품이 대거 포진하게 됐다.

문화는 물량승부가 아니다

미술시장 세계 1위의 기록을 세웠지만, 중국 미술엔 아직 한계가 존재한다. 규모로 보면 중국 미술시장이 세계 1위이지만 우리에겐 피카소나 앤디 워홀 등 서양 미술가만큼 중국 미술가가 친숙하지 않다. 이는 중국의 주요 고가 미술품인 체제 미술품이 주로 중국 내에서 거래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양인의 입장에선 중국이 세계 1위의 미술시장을 가지고 있는 것에 의문을 품을 따름이다. 이보연 교수는 “요즘은 미술경매 낙찰가격 분석사이트에서 중국과 비(非)중국을 나눠 조사하기도 한다”며 중국 미술시장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문화는 규모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중국 정부의 문화 정책이 어긋나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국내에서 무작정 가격을 올리는 방법이 아닌 중국 미술의 세계화를 목표로 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현대미술사 연구자 정창미 씨는 「중국현대미술의 베니스비엔날레 참여과정 연구」를 통해서 “현재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인정받는 중국 미술은 거의 반체제 미술”이라고 말했다. 조규훈 씨(경희대 중국경영학전공)는 「중국 미술품 가격형성 요인 분석연구」에서 “중국은 서양과 다르게 화랑보다 경매시장이 발달되어 있는 나라”라며 미술품에서 문화적 가치보다 경제적 가치를 찾으려는 중국 미술계의 특징을 강조했다. 이러한 미술계의 특징은 중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끌 수는 있어도 문화대국으로 이끌기는 어렵다. 현재 미술시장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의 보수적인 그림만이 중국 내에서 거래된다면 중국 미술의 세계화엔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중국 미술은 전통미술이 아닌 현대미술이기에 중국 정부는 문화 정책의 초점을 이에 조정해야 한다. 진정 문화대국이 되고자 한다면, 시장규모가 커져서 관심받는 미술이 아닌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아 시장규모가 커지는 미술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가 중국처럼 폐쇄적인 나라는 아니지만, 서양 문화가 한꺼번에 들어왔다는 점은 유사하다. 우리도 오랫동안 수묵화와 같은 동양화를 그려왔지만,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은 서양적 면모를 많이 띠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현대미술과 중국의 현대미술은 역사와 특징에서 유사점이 많다. 이에 중국 현대미술을 감상하며 흥미로운 부분을 많이 찾을 수 있다. 동시에 미술계가 정치계나 경제계와 같은 다른 영역과 맺는 관계를 알아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사실주의: 공산체제 선전을 위해 사실적인 예술을 사용한 움직임

삽화: 손지윤 기자 unoni0310@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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