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어떤 곳인지 알려면 서울대인을 보면 된다. 서울대인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공부를 잘한다는 거다. 서울대인에 대해 바깥 사람이 가지는 선입견은 오만함이다. 잘난 사람이 잘난 체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서울대인이 자기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공부를 잘했던가를 수시로 드러낸다. 심지어 서울대 밖에서만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그렇게 한다. 자기 과나 단대가 서울대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입학 성적이 높은 곳임을 굳이 말한다. 이런 유치한 오만이 개인적 차원에만 머물면 그나마 다행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 지으려고 하고, 자기 집단을 다른 집단과 차별하려고 하며, 그것도 모자라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자기 집단으로 세력을 만들려고 하면, 국가와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 최근의 국정과 사법농단 사건의 중심에 서울대 출신이 있다는 것에 대해 서울대 내부의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열등감은 오만함과 짝을 이루는 의식이다. 열등감은 진정 오만한 자만이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서울대인 중에는 의외로 열등감을 지닌 사람이 많다. 우리 인문대에서 최고 학점을 받아 법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사람이 자신은 법조계 주류가 되지 못한다고 한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학교 성적으로는 대한민국 0.1% 안에 들어갈 사람이 열등감과 패배감을 토로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열패감은 전 국민 우열의 척도로 사용되고 있는 대입 전국시험의 만점을 받은 사람을 빼곤 누구나 느낄 수 있고, 심지어 만점자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누구도 모든 분야에서 언제나 1등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일등주의’에 빠진 서울대인은 인생의 시작점에서부터 실패자일 수밖에 없다. 자기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잃어버리고 이룰 수 없는 목표인 1등만 추구하기에 어디를 가도 실패자가 된다. 그런 사람은 학문을 해서 교수가 돼도 실패자요, 법률을 공부해서 판사가 돼도 실패자다.

서울대인 중에는 오만함도 열패감도 없이 오직 자기 길만 묵묵히 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자기가 목표로 세운 일을 성패와 무관하게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눈앞의 작은 성공을 위해 욕심과 억지를 부리지 않고, 불평만 늘어놓으면서 자포자기하지도 않는다. 부단히 노력하지만 늘 여유롭고 편안하며, 자기 관리는 엄정하지만, 바깥에 대해서는 각박하지 않다.

서울대가 어떤 서울대인을 배출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서울대에 대한 한국 사회의 비판이 엄중한 현재 상황에서, 서울대가 그저 공부 잘하고 오만한 사람을 배출해선 안 된다. 차별과 패거리 의식으로 똘똘 뭉친 서울대인이 무사히 졸업해 교문을 나서는 것을 그냥 지켜봐서도 안 된다.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서울대인이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 돌아보게 하고 자기 길을 어떻게 헤쳐갈 수 있을지 힘을 불어넣는 교육이 필요하다. 서울대인의 자세와 길을 알려주고 서울대인에게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서울대학(學)’의 교육과 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 서울대인에게는 ‘서울대란 무엇인가’ ‘서울대인이란 누구인가’ 철저히 반성하는 시간이 적어도 한 번쯤은 꼭 필요하다.

정병설 교수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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