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현 강사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에 들렀다가 발견한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은 그 자리에서 금세 다 읽을 정도로 내게 흥미롭고 감동적이었다. 이 책은 서강대에서 2010년 2학기부터 2016년 1학기까지 ‘초급·중급 라틴어’를 강의했던 한동일 교수의 수업을 토대로 쓰였다고 한다. 이 수업은 명강의로 명성이 자자했는데, 책을 보니 딱딱하고 어려울 것 같은 라틴어 수업에 왜 수많은 청강생뿐 아니라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일반인들까지 이백 명이 넘는 수강생들로 북적였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인기의 비결은 난해한 라틴어 문법과 독해의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했던 데 있지 않았다. 인기 비결은 라틴어 어휘와 경구에 얽힌 로마인들의 생각, 나아가 유럽 문명의 어떤 속내를 잘 보여주면서 그것을 통해 ‘공부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는가’와 같은 우리 실존에 관한 물음에 개인의 경험을 더해 품격 있는 대답을 해줬던 데 있었다.

그런데 적어도 내게 이 책이 감동으로 다가온 이유는 다른 이들과 조금 달랐다. 대학에서 교양과목 수업을 하는 강사로서 나는 ‘교양’이 정확히 어떤 의미로 이 시대의 학생들에게 다시 자리를 잡아야 하는지 늘 고민해 왔다. 지금까지 교양 수업은 일반적으로 ‘전공’과 다른 편에 있는 영역으로, 졸업을 위해 학점을 이수해야 할 뿐 학기가 끝나면 쓸모없어 잊히는 게 당연하거나 약간의 지적 대화를 위한 얕은 지식을 건질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인식은 한 사람이 성장해 궁극적으로 전문 지식을 갖춘 직업인으로 양성돼 사회에서 안정된 역할과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던 사회에서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상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으로 전문 직업의 종말이 우려되고, 사회 환경과 자연 환경이 급격히 나빠져 우리의 기본적 생존마저 위협받게 된 오늘날엔 이 상식을 재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대학은 대체로 과거 사회의 관성과 결부된 낡은 학제와 전공-교양의 진부한 고정관념을 바꾸려는 시도를 별로 하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전공에 대해선 연구 중심 대학과 같은 기치 아래 특화되고 심화된 과정이 계속 개발됐으나, 교양은 사실상 방치된 상태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런 문제의식을 지니고 나름의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고민을 매 학기 첫 시간마다 학생들과 공유하곤 했던 나는 책 속에서 새로운 교양 수업의 훌륭한 모범 하나를 발견했기에 남다른 감동을 느꼈던 것이다.

책의 말미엔 라틴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보낸 편지가 수록돼 있다. 그 내용은 대체로 수업을 들으며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돌아보게 된 학생들이 스스로 어떤 변화를 만들며 살아갈 힘을 얻었는지, 세상의 부조리를 어떤 시각으로 비판할 수 있게 됐는지 감사의 마음을 담고 있었다. 시대의 격변과 개인의 성장을 함께 겪기에 수많은 어려움과 모순에 직면하게 되는 학생들에게 싸구려 위안이 아닌 고전어의 심오한 세계를 통한 품격있는 가르침이 라틴어 수업에서 보여준 교양이었다면, 나와 학생들은 ‘역사 속의 과학’을 어떤 교양 수업으로 만들어갈까? 개인의 삶과 세상의 관계를 더 통찰력 있게 들여다볼 도구를 마련해 성숙한 세계시민으로 살아갈 힘과 지혜를 갖도록 도울 수 있는 수업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과학과 기술이 과거에 사람들의 사회를 어떻게 조직하고 변형했는지 잘 알아본다면 과학과 기술이 더욱 만연한 오늘날 내 삶의 희로애락을 더 잘 성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가르침과 배움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개인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접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게 『라틴어 수업』은 감동과 더불어 새 시대의 교양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 고민을 더 안겨준 고맙고도 얄미운 책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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