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손에서 예술을 탄생시키다, 수화 아티스트 지후트리

입으로만 하는 대화, 손으로만 하는 미술이 아닌 손으로 하는 대화를 손과 몸짓으로 표현해낸 예술. 수어라는 언어가 가진 솔직함과 표현력에 매력을 느껴 수어를 그려내는 ‘수화 아티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가 있다. 그는 이제 대중들에게 수어의 매력을 나누려고 한다. 지난 14일(수) ‘지후트리’(ghootre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수화 아티스트 박지후 씨(31)를 연남동 ‘어루만지다 수화전(展)’에서 만났다.

‘어루만지다 수화전’의 작품 앞에서 박지후 씨가 수화 방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특히 ‘감싸다’를 표현한 작품(오른쪽 아래)엔 아기를 감싸 안은 엄마의 모습이 관람객에게 따뜻한 감정을 전달한다.

거짓말하지 않는 그날의 예술

수화 예술은 본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한 좋은 거울이 된다. 수화 아티스트 박지후 씨 역시 이를 경험했다. 박 씨는 “나를 키워주시던 삼촌이 사고로 오른팔을 잃게 됐다”며 “삼촌의 손을 대신하고 싶다는 마음이 손에 감정을 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그는 감정을 담는 예술을 하겠다는 일념을 갖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는 “작업을 할 때의 기분에 따라 색 표현과 선의 형태를 달리했다”며 본인의 수화 예술을 설명했다.

박지후 씨는 수화 아티스트가 되기 전 패션모델로 활동했다. 그에겐 항상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당시의 갈증은 현재 수화 아티스트로서의 그가 솔직하고 다양한 표현을 담은 예술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도록 했다. 박 씨는 “모델로 활동하는 동안 보이는 사람, 꾸며지는 사람으로만 살았다”며 “내가 그리는 그림만큼은 나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림이 되길 바랐다”고 강조했다.

모델로 살아갈 때와는 달리 박지후 씨는 꾸밈없이 솔직한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화려하게 꾸며졌던 모델로서의 경험은 그의 예술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는 “모델은 진한 색조 화장을 통해 본래 자신이 아닌 다른 역할을 맡게 되기 때문에 맡은 역할의 감정선을 이해해야 한다는 특성을 가진다”며 “감정선을 이해하는 모델로서의 경험은 감정을 녹여내는 현재의 작품활동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박 씨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그날의 감정을 여러 종류의 화폭에 담아낸다. 극대화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선 다소 무거운 아크릴물감을 사용하기도 하고, 가벼운 느낌을 담고자 할 땐 색연필, 드로잉 펜, 오일 파스텔만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는 “길을 걷다가 태권도 도장 합판을 주워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과자 종이상자 뒷면에, 리폼이 필요한 옷에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며 자유롭고 솔직한 그의 작품 세계를 드러냈다. 이토록 풍부한 표현을 사람들과 나누는 박지후 씨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뜻을 담아 ‘지후트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됐다.

숨겨둔 감정을 꺼내 보는 시간

박지후 씨는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내면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올해 박 씨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주최한 독거가구 벽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9월 한 달간 독거가구 노인의 허전했던 집 벽면을 행복한 감정을 담은 그림으로 가득 채웠다. 홀로 집 앞에 앉아 하염없이 밖을 구경하는 그들의 집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 것이다. 그는 “프로젝트가 끝나던 날 노인분과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다”며 “소통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는 예술을 할 것이라 다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 씨는 수화 예술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으로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오는 30일까지 연남동에서 열리는 ‘어루만지다 수화전’은 사람들의 내면을 이끌어내고 보듬어주기 위한 전시회다. ‘수고했다’ ‘꽃’ ‘성장하다’ 등 그날 느꼈던 작은 감정이나 관찰했던 장면을 풍부한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특히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그려진 참여자들의 벽화는 전시회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냈다. 벽화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벽면에 여과 없이 표현했다. 이에 대해 그는 “많은 참여자들이 프로젝트 초기에 하얀 벽을 보고 막막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감정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을 거치며 참여자들은 수화 속에 자신의 감정을 닮은 색을 채웠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마주하는 시간을 제공하고 싶었다”며 “벽화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직접 재료를 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린다는 참여자들의 말을 들었을 때 뿌듯함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손에서 시작된 메아리가 울려 퍼지기까지

대중들에게 다소 생소한 ‘수화 아티스트’의 길을 걷기까지 박지후 씨는 도전적인 삶을 살아왔다. 박 씨는 “수어가 동적인 언어이다 보니 평면적인 그림엔 그 움직임을 담아내기 쉽지 않다”며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패턴과 색을 계속 공부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평면적인 작업에 그치지 않고 조각, 설치, 영상작업도 준비하고 있다”며 “하나의 장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장르가 융합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전시를 위한 작품뿐만 아니라 몸으로 직접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있다. 연인인 현대 무용가 서일영 씨(29)와 함께 ‘후후탱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수어의 아름다운 손동작에 현대무용 장르를 접목해 보자는 취지에서 퍼포먼스 그룹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5월 진행된 ‘춘천마임축제’에서 후후탱크는 ‘꽃이 피는 계절, 당신이’라는 제목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에 대해 그는 “손에서부터 파생된 의미와 몸짓으로 사람들과 ‘따뜻함’을 공유하고자 만든 공연”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수화 예술의 저변을 넓힐 것이라는 그는 “‘후후탱크’를 더욱 발전시켜 그림과 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아우르는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 것”이라고 목표를 전했다.

박지후 씨는 솔직담백한 수어의 아름다움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대중들에게 수어의 아름다움을 억지로 설득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단지 수어라는 낯선 언어가 여러 가지 예술을 통해 메아리처럼 퍼져 그들의 마음에 닿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수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손에 손을 타고 모두의 마음에 전달돼 잔잔히 퍼져나가길 기대해본다.

사진: 손유빈 수습기자 yu_bin0726@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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