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희 취재부장

신문사에 들어온 뒤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을 묻는다면, 단연코 ‘자기소개’일 것이다. 신문사에 활동하는 3학기 동안 나는 ‘대학신문사’란 소속이 사람보다 앞서는, ‘자기’(自己) 아닌 ‘자기’(自棄)소개를 해왔다. 나를 버리지 않으면, 『대학신문』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선,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굳이 나와 만나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를 포기하고 만난 사람들은 내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일 년에 채 5일도 못 쉬는 대학원생의 일상, 폭염 속에서 묵묵히 일했던 노동자들의 여름, 화장실에 들어갈 수 없는 장애 학생의 휠체어, 그런 것들이었다. 듣지 않았다면 살면서 얼핏 들어봤을, 실제로는 알지 못했을 그런 것들 말이다.

사실 나 스스로 가진 시각이, 살아온 삶이 한계가 있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온전히 알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달에 직접 가보고서야 달의 뒷면이 있었는지 알 수 있듯, 그 사람이 돼 보지 않고선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그 상황에서 어떤 감정과 생각을 품고 있는지 가늠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론 ‘나’라는 중심이 확고하다보니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의 말과 행동이 나오기도 했다. 내가 그 사연을 겪어보기 전까지 남의 사연은 그저 불륜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이는 반대로, 다른 사람이 돼 봤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 지금처럼 낙엽이 떨어지던 당시 나는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하루를 경험했다. 내 이름을 지우고, 『대학신문』의 기자로 청소노동자의 하루를 함께 하고 나서야 나는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들이 청소노동자들에겐 쌓여있는 노동이란 걸 그제야 알게 됐다. 그 사람이 돼 보고 나서 그가 보였고, 그의 이야기가 이해됐다.

그리고 딱 120년 전, 프랑스의 한 신문 1면엔 군대에서 누명을 쓰고 유죄판결을 받은 한 유대인 군인의 사연이 실렸다. 누군지도 모르는, 심지어는 당시 핍박을 받던 유대인 군인의 사연을 들은 한 소설가가 쓴 글이었다. 유대인 군인에 공감한 소설가는 그 억울함을 신문에 알리기 위해 정부의 협박과 감시 속에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의 기사가 나간 뒤 사람들은 그의 기사에, 정확하겐 그 사건에 분노와 슬픔을 느꼈고, 얼마 안 돼 소설가가 적은 1면 기사는 진실과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의 함성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세상의 변화는 역지사지의 공감에서 비롯되곤 했다. ‘나였다면’이란 생각이 우리의 시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꿨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말과 글은 다시 더 많은 이들의 시각을 넓혔다. 음주운전에 스러져간 한 청춘의 뉴스가 음주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을 바꿔놓는가 하면, 생활고에 시달려 스스로 두 아이와 생을 마감한 어떤 엄마의 기사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던 이웃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 글의 결말은 다시 기자의 이름으로 돌아온다. 기자의 이름은, 그래서 ‘기자’라는 이름에 한 번 더 버려진다. ‘나’라는 자아를 잊고 온전히 타인이 될 수 있게. 그래서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그의 기사가 달의 뒷면을 보게 만들고, 남의 이야기도 사실은 로맨스였음을 말하는 도구가 되도록. 그리고 세상에 작은 변화를 이끌어 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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