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홍해인 기자 hsea97@snu.kr

화면에 클로즈업된 선연한 붉은 피. 바로 영화 〈피의 연대기〉의 한 장면이다. 나는 이래도 될까? 싶기도 했다. 그 붉은 피는 싸움을 하다 흘린 피도, 과로로 인한 코피도, 환자의 피도 아닌, 생리혈이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여성의 ‘생리’에 대해, 나 자신의 생리에 대해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것으로 여기고 있던 건 아닐까.

생리는 여성의 자연스러운 신체 현상이므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선 머리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일상 속에서 그것은 아직도 묵음 처리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니 그동안 가족이나 친한 친구 외에는 생리에 대해 함께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 불과 얼마 전, ‘라돈 생리대’ 파동으로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재점화 됐고, 그보다 전에는 생리대 빈곤 문제가 화두가 된 바 있다. 그 뉴스들은 생리와 관련된 문제를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도 이어지긴 했지만, 생리 그 자체에 대한 언급은 아니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생리가 당당하게 말해지고 공론화됐는가?

초등학교 때 성교육의 일환으로 생리대를 나눠준 적이 있었는데, 사용법에 대해선 듣지 못한 데다 무얼 나눠줬는지는 남학생들에겐 일종의 비밀이었다. 중학교 때 한 선생님은 화장실에서도 조용히 생리대를 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게 내게도 생리와 생리대는 하나의 금기어가 돼갔다. 아직도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살 때면 검은 봉지에 담아주는 점원의 센스에 안심하곤 하며, 남성 점원이 있을 때면 정면보다 약간 우측의 허공을 응시하면서 계산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TV 드라마에선 생리가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간혹 남자에게 생리대 구매를 부탁하는 여자의 모습이 인물들의 관계와 여성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는 기능을 할 뿐이다. 아니면 딸의 초경을 축하해주는 장면이거나, ‘그날이냐’고 소리치는 상사의 모습, ‘그날’이라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투덜대는 모습이 드라마에서 생리를 소비하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다. 그리고 김훈의 소설 「언니의 폐경」의 비현실적인 묘사는 생리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여실히 보여줬다. 생리에 대한 신비화와 왜곡된 시선 속에서, 많은 이들은 첫 생리에 대한 축하가 무색하게도 그 이후의 생리에 대해 침묵해야 했던 것이다.

『대학신문』을 살펴보니, 생리가 더 이상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2005년 사회대 페미니즘 문화제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2006년엔 ‘월경페스티벌’이 이제는 대중 속으로 들어가 인사동과 홍대 앞에서 열렸다는 기사가 있다. 그러나 영화에도 나오듯, 미국의 공영방송들과 잡지 「코스모폴리탄」은 2015년을 생리가 세상 밖으로 나온 해로 규정했다. 이는 그것이 실제로 세상 밖으로, 대중 속으로 나온 것이 얼마 되지 않았음을 거꾸로 보여준다.

2016년 뉴욕 시의회는 공립학교 등에 생리대와 탐폰을 무상 공급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지난 10월 서울시는 공공시설 화장실에 비상용 생리대 자판기 비치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생리대 무상 공급에 대한 논쟁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이 있다. 생리 자체에 대한 혐오나 신비화를 없애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생리가 여전히 신비스럽거나 부끄러운, 말할 수 없는 비밀로 남는다면, 생리대의 안전과 빈곤에 대한 이슈들은 안타까운 뉴스거리로 소비되고 말 것이다. 일상에서 당당하게 생리에 관해 얘기할 수 없다면, 생리대를 사용하는 여성들의 경험도,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깔창’이나 수건으로 대신해야 하는 아픔도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로만 수렴되기 쉽기 때문이다.

유예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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