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 소득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사전적 분배 조치, 최고임금

최고임금
샘 피지개티
허윤정 옮김
174쪽
13,000원
루아크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방법인 최저임금제는 오늘날 대부분 국가에서 운용되고 있는 정책이다. 연말이 되면 이듬해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하는 문제로 각계가 들썩인다. 이에 반해 ‘최고임금제’라는 용어는 생소하다. 일명 ‘살찐고양이법’이라 불리는 이 정책은 최저임금이 임금의 하한선을 두는 것처럼 초고소득층, 이른바 ‘슈퍼리치’들을 위한 상한선 역시 필요하다는 주장에 기반한 것이다. 2017년 기준 억만장자 42명의 순 자산 총합이 세계인의 절반인 하위 37억 명의 전체 순자산과 맞먹는 극도의 불평등 시대에 샘 피지개티는 『최고임금』을 통해 최고임금 정책이 정치적 몽상을 넘어 소득불평등을 해소하는데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한다.

임금은 개인의 소득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다. 따라서 보다 정확하게는 최고임금을 ‘최고소득’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이 아이디어는 주로 소득이 특정한 선을 넘을 경우 100퍼센트의 세금을 물리는 형태의 ‘누진 소득세’를 통해 실현됐다. 그러나 피지개티는 이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조세 제도를 결정하는 일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얽혀있기 때문이다. 고소득자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문제에 대해 각 계층마다 관심의 정도가 다르다. 일반인들은 최고 과세율을 높게 유지해야 할 강력하고도 직접적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실제로 20세기 초에 평등주의자들이 관철시킨 높은 소득세는 슈퍼리치들의 부단한 정치적 수법과 세법 논쟁을 거쳐 겨우 30퍼센트대를 유지할 뿐이었다.

피지개티는 “어떤 정해진 금액을 초과 지급하는 것을 명백히 금지하는” 최고임금제가 이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한다. 최고임금제는 기본적으로 최상위 소득과 최하위 소득을 연동하는 방식을 택한다. 예컨대 최상위 소득은 최하위 소득의 100배를 웃돌 수 없다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슈퍼리치들이 최하위 계층의 소득을 높여야겠다는 실질적인 동기를 갖게 만든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근본적으로 조정함으로써 소득분배의 실제적인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방식이다.

최고임금제를 택해야 하는 또 다른 까닭은 불평등의 타개를 위해선 소득재분배 이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피지개티는 “우리는 불평등을 일으키는 경제를 주어진 상태로 간주한다”며 “소득재분배를 통해 이를 사후적으로 수습하는 것뿐만 아니라, 불평등이 덜 발생할 수 있도록 사전분배에도 역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을 통해 부의 사전분배와 재분배가 대립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것처럼, 피지개티는 최고임금을 도입하는 조치를 통해 누진세 등의 기존 재분배 방식만으로는 역부족인 측면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최고임금제는 어떤 방식으로 도입돼야 할까? 피지개티는 공공지갑(public purse)을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일반적으로 경제를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으로 분리해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민간 기업은 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공공사업의 수주 없이 자생적으로 운영되지 않기에 공공자금이 들어있는 지갑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이때 불평등을 완화하는 최고임금제를 도입한 대안적 기업에게 공공지갑을 열면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일 수 있다. 예컨대 기업 내 임원과 근로자 간의 급여 차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해서 최고임금제를 시행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다. 결국 공평성을 중시하는 기업이 경쟁에서 유리한 요소들을 더 가져가게 된다.

물론 최고임금제에 우려되는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슈퍼리치가 없는 사회에서 경제활동의 활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큰 부에 대한 열망, 슈퍼리치의 존재가 없다면 소비문화가 풍성해질 수 있는 계기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피지개티는 ‘렉서스 차선’의 예시를 통해 이런 주장에 반박한다. 렉서스 차선은 교통량이 증가했을 때 운전자가 통행료를 더 지급하면 사용할 수 있는 차선이다. 슈퍼리치는 요금을 내고 이 차선을 통해 목적지까지 빨리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꽉 막힌 도로의 멈춰선 차 안에서 애만 태운다. 이는 로버트 프랭크 교수(코넬대 경제학과)가 명명한 ‘소비의 폭포’ 효과와도 연결된다.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에서는 부자들의 수요만으로 충족되는 렉서스 차선, 그들만의 소비 시장이 비대해진다. 이는 그 아래에 있는 소득계층에게 더 높은 소비 기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압박을 증가시킨다. 해당 현상은 특히 사치품 시장에서 두드러지며, 더 좋은 차, 더 비싼 옷에 대한 이미지와 욕구가 계층 간에 폭포처럼 흘러내리게 된다. 그러나 실상 그런 소비는 슈퍼리치들 내에서나 향유 가능한 것일 뿐이다. 극단적인 소비문화에 대한 기대는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소모적인 신분 게임만을 강화할 뿐 시장에 건강한 활력을 불어넣지 못한다.

불평등과 양극화는 오랜 시간 우리 곁에 자리해왔다. 지금까지 최고임금제를 실현하고자 한 시도는 단 한 번도 정치적으로 지속되지 못했으며, 이를 도입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지금 당장 우리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피지개티는 최고임금의 도입이 한낱 몽상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부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는 끊임없는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윤추구가 경제행위의 중추적인 동기인 것은 맞지만,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결정하는 전부는 아니다. 더 평등한 사회를 추구함으로써 행복을 증대시킬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이윤추구 못지않은 경제주체의 핵심적인 동기일 것이다. 우리의 욕망에도 상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고임금
샘 피지개티
허윤정 옮김
174쪽
13,000원
루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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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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