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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닌 범죄, 데이트 폭력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기사승인 2017.11.26  0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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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 데이트 폭력의 해결, 필요한 논의를 톺아보다

누구나 사랑하는 이와 함께 보낼 다정한 나날을 기대하며 살아가지만, 모든 연애가 우리의 기대만큼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다. 어떤 연애는 상대방을 옥죄고, 상처 주고, 죽음에 이르게 하며 이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없는 분명한 ‘폭력’에 해당한다. 데이트 관계*에서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은 그간 사적인 영역에서 벌어지는 사랑싸움 정도로 취급받았지만 최근 큰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됐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 데이트 폭력으로 형사입건된 피의자만 4,565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형사입건에 이르지 않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피해는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 또한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이지는 않은가?=데이트 폭력은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신체적 폭력에만 해당하는 개념이 아니다. 형사입건에까지 이르게 되는 데이트 폭력의 유형은 주로 신체적 폭력에 해당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외에도 정서적·성적·경제적 폭력 등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 정서적 폭력이란 △데이트 관계에 있는 당사자 간 폭언을 통해 상대방의 자아를 손상시키거나 △감시와 통제를 통해 상대방의 사회 활동이나 행위에 제약을 가져오거나 △자살이나 살해 등의 협박을 통해 상대방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등의 행위를 의미한다. 더불어 성적 폭력은 데이트 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스킨십을 강요당하거나 데이트 관계에 문제가 발생할까 우려해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갖는 등의 경우에 해당하며, 경제적 폭력은 데이트 관계에 있는 상대방에게 돈이나 고가의 선물을 요구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정서적 폭력 중에서 특히 상대방에 대한 행위 규제는 데이트 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이 일반적으로 잘 인지하지 못하는 데이트 폭력의 양상 중 하나다. 박현정 교수(조선대 법과대학)는 “피해자는 초기에 상대의 간섭 행위를 관심의 표현으로 여기고 가해자 또한 자신의 간섭 행위를 보호의 명분으로 포장하면서 가볍게 넘기지만, 점차 간섭의 빈도가 잦아지면서 피해자는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며 “휴대폰을 수시로 검사하거나 일과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통제를 보이는 행위는 명백한 정서적 감금 상태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데이트 폭력의 유형은 다양하며 우리 사회에 일상적으로 만연해 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여성의전화가 데이트 관계 경험이 있는 만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설문 답변자 1,082명 중 여성 1,017명의 61.6%가 데이트 관계에서 폭력 피해(신체적·정서적·성적·경제적 폭력 등)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모든 유형의 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11.5%에 달했을 만큼 우리 주변에서 데이트 폭력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데이트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당신,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놀라운 사실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데이트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자신의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한 일이 데이트 폭력에 해당한다고 인지하지 못하거나, 이를 인지하더라도 데이트 관계가 지속되면서 폭력이 계속해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박현정 교수는 “가정 폭력이 사적인 공간에서 발생해 쉽게 감춰져 왔던 것처럼 데이트 폭력 또한 ‘연인’이라는 특수한 폐쇄적인 관계에 놓여있는 까닭에 은폐 성향이 짙다”며 “가해자의 사과와 정에 이끌린 피해자의 용서가 반복되면서 폭력이 계속해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사무처장 역시 “폭력을 가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가해자의 행위는 피해자로 하여금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폭력과 집착을 행하는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며 “상대방의 폭력성을 고칠 수 있다고 믿는 피해자의 생각 또한 폭력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일선의 여러 성폭력상담소가 나서 데이트 폭력 피해자에 대한 법률적·심리적 지원을 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데이트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피해자가 가해자의 폭력 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하다”며 “우선 자신이 경험한 피해가 폭력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이와 같은 폭력이 반복되기 전에 반드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응 과정에선 피해자가 데이트 폭력의 증거를 수집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송란희 사무처장은 “폭력 직후가 아니면 확보하기 어려운 증거가 있다”며 “그 당시엔 법적 대응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증거 자체가 폭력에 대응할 수 있는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데이트 폭력 피해자는 상대방이 폭력을 행사한 사건 일지를 자세히 기록하고 대화 녹음이나 문자 등의 자료를 미리 남겨두는 것이 좋다. 나아가 신체적·성적 폭력이 발생했다면 반드시 112에 신고하고, 신고하지 못한 경우에도 병원에 피해 사실을 알려 진단서를 끊고 사진을 찍어두는 등 폭력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이끄는 제도적 차원의 개선 필요해=데이트 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분명한 폭력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응해기 위해선 데이트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우선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그간 우리나라의 경우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은 특수한 사적 영역이라는 인식에 따라 경찰권의 발동을 통한 개입을 꺼려왔다. 가정 폭력 문제는 피해자와 가족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1997년 특례법이 만들어지는 등 점진적인 인식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데이트 폭력은 여전히 연인 간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하다. 박웅광 교수(영남대 법과대학)는 “경찰에 개입을 요청해도 데이트 관계는 사적 영역이라는 인식 때문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다 보니 피해자가 반복되는 폭력에 무기력하게 순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데이트 폭력에 있어서 경찰권이 적절하고도 선제적으로 발동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선 제도적인 차원의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가정 폭력 특례법이 만들어졌던 선례처럼 데이트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되려면 경찰권 개입의 명백한 근거가 될 수 있는 법적 규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데이트 폭력만을 체계적으로 형사 제재하는 법을 두고 있지 않으며 각각의 폭력 양상에 따라 사후에 개별법을 적용하고 있다. 예컨대 데이트 폭력에 대한 제재는 폭행·상해·공갈·강요·협박·감금 등의 경우 형법을 적용하고 있으며, 성폭행·성추행·리벤지 포르노 등의 경우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을, 보복범죄의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을, 스토킹의 경우 ‘경범죄처벌법’ 등을 적용하고 있다. 박현정 교수는 “현재 데이트 폭력에 대한 형사적 제재를 기존 법률에만 의존하다 보니 경미한 사안에 대한 초동수사가 쉽지 않다”며 “대체로 강력한 데이트 폭력 사건만 언론의 주목을 받지만 데이트 폭력은 경미한 유형에서부터 점차 강화되는 특징을 보이는 만큼 근거 규정을 마련해 적극적인 초동수사를 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데이트 폭력 근절을 위해 어떠한 법적 대안이 가능할 것인가?=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이 커지면서 이와 관련한 해외 사례를 검토하는 등 법적 논의 또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데이트 폭력을 예방할 수 있도록 한 영국의 ̒클레어법'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높다. 클레어법은 가정 폭력 전과자의 전과 정보를 새로운 애인에게 제공해 데이트 관계를 지속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잠재적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반면 잠재적 가해자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박현정 교수는 “클레어법과 같은 사전 예방 제도를 도입하기에 앞서 데이트 폭력에 대한 독자적인 형사 제재 규정부터 먼저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영국의 경우 가정 폭력의 영역에 데이트 관계를 포함해 보호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데이트 폭력에 관한 독자적인 형사 제재의 근거조차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클레어법의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일본의 사례 또한 흥미롭다. 일본은 데이트 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이 동거 관계인 경우 가정 폭력 방지법을 경찰권 발동의 근거로 두고 있으며, 당사자들이 동거 관계가 아닌 경우에도 스토커 규제법이라는 별도의 특례법을 마련하고 있다. 박웅광 교수는 “일본은 비록 제한적일지라도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이원화된 규제 체제를 갖추고 있다”며 “우리나라 또한 데이트 폭력 특례법을 제정하거나 일본처럼 가정 폭력의 영역에 데이트 관계도 일부 포함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의 사례를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는 우선 데이트 폭력에 대한 명시적인 형사 제재의 근거부터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방안으로는 데이트 폭력 특례법의 제정이나 가정 폭력의 영역에 데이트 관계를 일부 포함하는 방향이 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대선공약이기도 했던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의 제정을 국정과제로 지정해 추진하고 있으며, 국회에서도 데이트 폭력에 관련된 여러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송란희 사무처장은 “법안이 발의됐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그 내용이 중요하다”며 “분명한 범죄 행위로서의 데이트 폭력을 적극적인 초동수사를 통해 제지하고, 가해자로부터 피해자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가해자의 범죄 행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트 관계: 연인으로 만나고 있거나 만난 적이 있는 관계와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인정하고 만나는 관계까지 포함하는 개념

삽화: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이지윤 기자 dlwldbs64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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