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의 의의와 한계를 톺아보다

지난달 25일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의협 비대위)는 성명을 발표하며 보건복지부와 정부 당국에 경고를 보냈다. 의료계와 정부 관계자들이 이른바 ‘문재인 케어’라고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의 세부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한 ‘의정실무협의체’에서 당국이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며 문재인 케어를 충분한 논의 없이 밀어붙이고 있다는 주장이 골자였다. 의협 비대위 이필수 위원장은 ‘정부가 8차에 걸친 의정실무협의체 회의 내내 원론적인 자세를 고수하며 문재인 케어의 원안을 일방적으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상정하려는 등 의료계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정부의 일방적인 문재인 케어 강행에 대항하기 위해 제2차 전국의사총궐기대회와 대국민 홍보 등의 다양한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공약으로 내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은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의료비 부담 저하와 가계 파탄을 막아줄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의 강화를 목표로 한다. 우리나라의 가계 의료비 부담수준은 36.8%로 OECD 평균(19.6%) 대비 약 1.9배 높은 수준이며,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 의료비가 가계 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문재인 케어 설계에 참여한 허윤정 교수(아주대 의학과)는 “국민들의 의료이용 접근성을 높이고, 의료비 부담을 줄이면서 국민들의 건강권을 보장하려는 목표를 지향하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재인 케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의협 비대위는 문재인 케어가 동네병원의 주요 수입원을 끊어 그들의 생계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김주경 입법조사관은 “파격적인 보험 급여 확대가 의료 이용량의 급증을 불러올 것”이라며 “경제적 장벽으로 인해 억제돼 있던 잠재적 의료 수요가 가시화될 경우 건강보험 재정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찬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대학신문』은 문재인 케어를 쟁점별로 살펴보면서 대한민국 의료 복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정부는 문재인 케어를 통해 기존에 비급여로 분류되던 진료 항목을 전면적으로 급여로 전환하고, 미용·성형 등 일부 치료의 성격이 적은 진료의 경우 비급여로 유지하되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민들이 소득수준에 따라 의료비를 지출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취약계층은 의료비 부담이 많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장선상에서 정부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확대하고 기존의 의료비 지원 제도간 연계성을 높이는 등 의료안전망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비급여의 급여화, 의료계의 불신에 부딪히다

문재인 케어의 가장 큰 논쟁거리는 ‘비급여의 급여화’다. 진료비는 건강보험을 적용받느냐 아니면 모든 비용을 환자가 부담하느냐에 따라 급여 항목과 비급여 항목으로 나눠진다. 비급여 항목은 환자들이 전문성 높은 의사에게 진료받는 대가로 지급하는 선택진료비가 대표적이며, MRI나 CT의 경우 질병이 확인되면 해당 진료비가 급여로 인정되는 반면 이상이 없을 경우 비급여로 산정된다. 현재 비급여 항목이 전체 진료비의 30~40%를 차지하는 가운데, 문재인 케어는 이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가 비급여 항목을 전면적으로 급여 대상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종명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보건의료팀장은 “건강보험이 보편적인 의료 보장제도로 기능해야 하지만 아직까진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충분히 경감시켜주지 못하고 있다”며 “비급여의 급여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건강보험은 진료할인제도에 그친다는 오명을 씻기 힘들 것”이라 주장했다. ‘비급여의 급여화’를 단계별로 추진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는 예비급여제도를 제안했다. 미용·성형 등 일부를 제외한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2022년까지 급여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되, 그 효과가 의학적으로 미흡하다고 판단되는 서비스에 대해선 본인부담 비율을 50~90% 범위에서 차등적으로 적용하자는 것이다.

비급여의 급여화에 대한 가장 큰 쟁점은 의료 수가다. 의료 수가란 환자가 의료기관에 내는 본인부담금과 건강보험공단에서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급여비의 합계로, 의료기관이 의료 행위를 통해 얻는 총액이다. 건강보험제도가 시작된 박정희 정권 시절 의료 수가는 원가의 50%에 불과했으며, 이후 수가 인상이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지만 현재도 원가의 70~80%에 그쳐있다. 이 때문에 의협 비대위를 비롯한 의료계에서는 비급여의 급여화가 의사들에게 ‘저수가’를 강요할 것이라는 예측이 주를 이룬다. 수가 인상 없이 예비급여제도가 시행되면 이전과 달리 비급여 항목에서도 원가보다 낮은 수가만큼만 보전받게 돼 많은 병원이 재정난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상이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의료 수가가 원가보다 낮아 동네 의원이나 중소 병원은 비급여 항목을 주요 수입원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며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손해 없이 비급여를 급여화하겠다는 정부의 설명을 무조건 신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김종명 팀장은 모든 문제를 저수가 탓으로 돌리는 의료계의 태도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는 “의료계는 문재인 케어 때문에 의료계가 망한다는 식으로 주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예비급여제도가 시행되면 진료 수익은 줄어들겠지만 그 차액은 기존 수가를 인상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문재인 케어가 수가 보전책도 담고 있는 만큼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늘리고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데 의료계도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수가 보전책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으로는 의료 분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주된 수입원이 MRI인 동네 정형외과의 경우 원래 비급여 항목이었던 MRI가 급여로 바뀌면서 손해를 보게 되지만 내과와 같이 전체 수입에서 비급여 항목의 비중이 적은 특정 과들은 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허윤정 교수는 “물론 의사협회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문재인 케어의 시행과정이나 시행방식에 대한 의견 격차에 대해서는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들과 다양한 경로로 정부가 소통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재난’이 된 의료비부터 손보자는 정부

‘비급여의 급여화’에 대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나날이 커지면서, 문재인 케어의 또 다른 축인 취약 계층에 대한 의료 혜택 강화와 재난적 의료 가구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상이 공동대표는 “비급여의 급여화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포괄적으로 확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취약 계층에 대한 우선적 혜택 강화 역시 대한민국 건강보험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제적 장벽을 뛰어넘기 어려운 취약 계층은 선진국보다 낮은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더 크게 체감한다”면서 “이런 구조적 결함은 의료 이용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특히 암과 같은 중증질환의 경우 가계 파탄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며 취약 계층에 대한 의료 혜택 강화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문재인 케어를 통해 어린이 입원비의 본인부담률을 20%에서 5%로 낮추고 중증 치매 노인의 의료비 본인부담률도 10%까지 내리기로 했다. 또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비 중 환자가 부담하는 본인부담금의 상한선을 낮추는 정책이 이번 연도부터 시행 중이다. 가구의 소득 수준을 기반으로 소득 1분위 환자의 경우 현재 122만 원인 본인부담 상한액이 80만 원으로 낮아지며, 2~3분위는 100만 원, 4~5분위는 150만 원으로 인하된다. 더불어 정부는 낮아진 본인부담상한액에도 불구하고 비급여 의료비 등으로 인해 고액의 의료비가 발생하는 환자에 대해서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 사업’을 통해 비급여와 예비급여로 인한 의료비를 지원함으로써 의료 안전망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난해까지 4대 중증질환에만 적용됐던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올해부터 모든 질환의 입원·진료와 중증질환 외래진료까지 확대해 저소득층 지원을 제도화한 것이다. 허윤정 교수는 “저소득층과 서민 계층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라고 평가하면서 “지난 10년간 63% 수준에 정체된 건강보험 보장률에 희생된 취약계층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국민을 위한 문재인 케어, 국민의 곳간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들어갈 재원의 확보와 이에 따른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 여부는 또 다른 쟁점으로 꼽힌다. 정부는 문재인 케어를 발표하면서 2022년까지 30조 6,000억 원의 재정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는데, 건강보험 재정 적립금에서 10조 원을 활용하고 건강보험료를 인상하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한 재원 마련에 힘쓰고 있다. 김주경 입법조사관은 “정부는 건강보험료 인상수준이 지난 10년의 평균 상승률인 3.2%대에 머물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이 정도 수준의 인상률로 건강보험의 확대된 수요를 과연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적 이유로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취약 계층의 잠재적 의료 수요가 드러날 경우, 지금의 보험료 인상 수준으로는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입원율은 OECD 회원국 평균의 2배 이상에 달한다는 점에서 재정 문제는 간단히 볼 사안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에 건강보험의 보장 수준을 70%까지 끌어올리고 그 이상의 보장성 강화는 다음 정부에게 맡긴다는 방침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작년 9월 19일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건강보험 보장성도 강화하고 치매도 국가에서 책임진다면 국가가 과연 그 재정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 많다’며 ‘정부 나름대로 앞으로 5년이 아닌 몇십 년 후에도 건강보험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문재인 케어 시행 이후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료계와 시민단체가 꾸준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에 시민단체는 빠른 미래에 건강보험 보장률을 OECD 평균인 80%까지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상이 공동대표는 “80%까지 보장 수준을 높이는 것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면서도 “건강보험료를 더 많이 납부하겠다는 국민들의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경 입법조사관은 “사회보장제도의 급여 확대와 보험료 부담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며 “문재인 케어 이후 성공적으로 보장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부담에 기초한 보장 확대’로 정책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문재인 케어는 이전까지 시행된 보장성 강화 정책과 달리, 비급여를 전면 급여화한다는 점에서 국가의 의료보험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라고 평가된다. 대만과 일본의 경우 국민소득의 9%, 독일은 14%, 프랑스는 16%를 건강보험료로 납부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납부율은 6.24%에 불과하다. 현 제도의 저 부담-저 급여 체계에서 적정 부담-적정 급여로의 이행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이다. 하지만 예비급여제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문재인 케어 정책은 의료계의 반발로 제자리걸음 중이다. 의료계와 정부, 그리고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모두가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정책을 고심할 때다.


삽화: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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