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권민주 기자 kmj4742@snu.kr

논문을 쓰려 하지만, 빈 문서 위에 커서만이 명멸하고 있다. 글을 쓰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는 것은 대학원에 들어와 처음 알게 됐다. 실어증(失語症), 아니 실문증(失文症)이라고 해야 옳겠다. 지독한 실문증에 걸린 대학원생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 원인은 복합적일 것이다. ‘창작의 고통’이란 표현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닐 테고, 연구를 업으로 삼으려 대학원을 선택한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대학원에서의 공부는 절대 녹록지 않다. 대학원생이 학업에만 열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대학신문』의 간사가 되기 전, 박사 입학 무렵이었다. 통장을 개설하기 위해 은행에 방문했으나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 계좌 개설 요건이 강화됐다고 했다. 통장 개설 목적을 증명하기 위해선 급여명세서나 재직증명서와 같은 증빙서류가 필요했지만, 내겐 급여도, 재직증명서도 있을 리 없었다. 겨우 이체 한도가 낮은 비대면 계좌를 개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체 한도를 높이기 위해선 여전히 증빙서류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느 후배는 신용카드 발급을 거절당한 적이 있다고도 했다.

그리고 가끔 설문조사를 할 때면, 직업을 무엇으로 표시해야 할지 고민했다. 설문지에는 대개 대학원생 항목은 없었다. 대학생도, 직장인도 아니기 때문에 직업란 그 어디에도 표시할 수 없다면, 직업이 없다고 해야 할까? 분명히 강의실이나 연구실을 오가며 학업과 연구,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학생인 듯 학생 아닌 학생 같은’ 내 신분은 퍽 애매모호하게 느껴졌다. 인문계열 대학원생인 나로선, 이공계열과는 달리 ‘랩실’에 소속돼 출퇴근하진 않기 때문에 적게나마 급여를 받지도 않았고, 강의 조교라도 하지 않을 때면 노동을 한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기도 애매했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지지 않는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누가 무엇을 얼마큼 읽으라고 정해주면 좋으련만, 학문적 전문성은 자신의 연구량에 달린 것이다. 무한한 바다에 홀로 던져진 느낌이랄까. 대학원생들이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조교로 근무를 하거나 학교 밖에서 부업을 병행하는 경우, 시간을 쪼개 공부를 해야 하므로 졸업이 지연되기도 한다. 학업에만 ‘올인’하는 것보다는 연구 성과를 내기 힘들 가능성이 크고, 연구하는 것이 주가 돼야 하는 대학원생으로선 공부를 더 하지 못 한 데 대한 자책이나 학자로서의 적성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 게다가 순수학문을 하는 대학원생의 경우 공부에 올인하지 않는 것은 자칫 불성실하거나 학문적 열정이 없다는 꼬리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문계열 대학원생들의 경우 근로를 할 수 있는 것은 차라리 행운이다. 강의연구장학금제도(GSI)는 수혜 인원이 적을뿐더러 생활비를 조달하기엔 부족하다. 등록금 전액과 생활비를 지원하는 한국연구재단의 장학금제도도 있지만, 지원 기간 내내 전업 학생 자격을 유지해야 하며 선정되는 인원 또한 매우 소수다. 힘들게 학업 계획서를 써봤자 선정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신청을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정부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도 거의 없으며, 모두가 강의 조교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박사과정 수료 후에는 일도, 소속감도 없이 연구를 해야 하는 대학원생들도 많이 있다.

종종 화제가 되곤 하는, 대학원생을 둘러싼 부조리와 폭력에도 여러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대학원생이 연구에 몰입할 수 없고, 대학원생의 노동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으며, 장학금을 받는 데 지도교수의 영향력이 큰 구조 아래서 이런 뉴스는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른다. 이 속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후속 학문세대가 나올 리도 만무하다. 『대학신문』 1964호 사설은 ‘맞춤형 장려금 지원제도’를 다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 제도를 장기적으로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대학원생 생활권과 연구 환경을 위한 개선책이 되리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과연 언제 인문계열 대학원생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대학원생들이 보다 나은 연구 풍토 속에서 학문과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유예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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