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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스룰, 성범죄 재판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까

기사승인 2018.09.01  20: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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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민스노’(No Means No)와 ‘예스민스예스’(Yes Means Yes)룰을 들여다보다

지난 14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행사 혐의를 다룬 1심에서 ‘노민스노’(No Means No), ‘예스민스예스’(Yes Means Yes)룰 이라는 생소한 개념이 등장했다. 해당 사건을 맡은 조병구 부장판사는 안 전 지사와 김지은 씨 사이에 위력 자체는 존재하나 성관계에 있어 위력의 행사를 입증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노민스노, 예스민스예스 룰의 도입 여부는 입법부에 달려있으며 현행 법률 체계에서는 위력 관계의 존재만으로 사법부가 자의적인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두 법률체계 모두 강간의 구성요건과 관련된 것으로 전자는 상대방이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보였음에도 성관계로 나아간 경우에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체계를 뜻하고 후자는 명시적인 합의 없이 일어난 성관계 모두를 강간으로 본다.

현행 법률은 강간의 구성요건을 폭행이나 협박으로 보고 있고, 형법 제303조의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는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나 여전히 성관계에 반하는 의사 표현을 하더라도 성관계에 행사된 위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번 사건에서 위력의 행사가 실재했다고 보기 어려워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 두고 노민스노나 예스민스예스룰을 실제 법체계에 도입해야 하는 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는 입법인가 사법인가, 불 붙은 책임 공방

사법부의 입법 요구를 두고 책임회피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번 사건의 판결이 그간 사법부가 내린 관련 판결의 피해자를 고려하는 흐름과 결을 달리한다는 지적이 주된 근거로 제시된다. 재판부는 안희정 사건에서 피해자의 명시적인 거부 의사가 부족했다고 판단했다. 김형진 변호사는 “지하철 잡상인이 무릎 위에 물건을 놓고 ‘여러분들이 안 산다는 말을 안 하셨으니 다 사시는 것으로 보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명시적으로 성적인 접근을 반대하지 않았을 경우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박아름 활동가는 재판부가 노민스노룰을 언급한 것에 대해 “힘의 차이로 인해 ‘노’(no)라고 말조차 할 수 없는 피해자들이 있는데 피해자에게 노를 말해야 하는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판사에 따라 무엇을 동의와 비동의로 볼 것인지는 달라지므로 판결은 성인지 감수성 문제가 핵심이 된다”고 언급했다.

법률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성차별적인 의식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달 24일 열린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김태명 교수(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안 전 지사에 대한 판결은 업무상 위계에 의한 간음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는 사건”이라며 “남성 중심적인 성인식 사실 판단에 기초한 사법부의 잘못된 해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태명 교수의 지적은 여성단체에서 주장해온 사법 불평등과도 맞닿아 있다. 지난달 4일 광화문 여성시위, 25일 열린 ‘헌법앞성평등’ 시위 모두 사법행정 전반에 퍼져있는 성차별을 문제 삼았다. 그들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는 성범죄 역시 처벌 수위가 해외보다 한없이 낮은 것만 보더라도 성범죄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원행정처의 『사법연감』에서 나온 성폭력범죄 제1심판결 연도별 추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성범죄에 대한 처벌의 과반수가 재산형과 집행유예 정도로 그쳤다. 대법원 역시 지난 4월 한 판례를 통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에선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이때문에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무죄를 받은 데 반발하는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이번 판결이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아름 씨는 “가해자 입장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파악하는 어려움을 우선시한 안희정 사건처럼 가해자 관점으로 성범죄에 접근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노민스노, 예스민스예스 룰 도입과는 별개로 개별 사건의 판단에 있어 가해자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우선 고려하는 사법부의 시각이 잘못됐다는 말이다.

죄 없는 가해자? 민스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현행법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노민스노, 예스민스예스 룰의 도입으로 강간죄에 대한 보다 넓은 해석이 가능해짐으로써 피해자의 입장을 좀 더 고려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달 21일 ‘형법 일부개정 법률안’,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성폭력처벌법)을 제출한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은 “현행 강간죄는 협박과 폭행이 있어야만 성립하고 협박의 정도를 ‘피해자의 항거를 불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성호 교수(경희대 철학과)는 “강요나 위력이 없는 상태에서도 상대가 원치 않는 성관계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며 “비동의 간음죄의 부재로 인해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에서 피해당할 수 있는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노민스노, 예스민스예스 룰의 부작용으로 부당하게 성범죄자로 몰리는 무고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무고한 사람을 가해자로 만드는 사례를 엄격하게 처벌하자는 무고죄 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청와대 청원 글이 24만여 명의 동의를 얻었을 정도다. 이에 대해 청와대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무고죄의 형량을 높이거나 특별법을 만드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법정형에 비해 낮은 양형기준을 개선하거나 수사를 면밀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김수민 의원은 “‘열 사람의 범인을 놓쳐도 억울한 한 사람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법의 기본원칙을 존중한다”면서도 “실질적인 성범죄 피해자가 법적으로 보호되지 못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이를 두고 박아름 씨는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1~2%가량으로 추정되는 무고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다”며 주장했다. 또한 그는 “비동의 간음죄가 입법된다고 할지라도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법정에서 피해자 진술 일관성이나 전반적인 상황 등 성폭력 판단 근거들이 있는데 일부러 무고하기 위해 거짓말로 증거를 말할 수 있지 않다”고 일축했다.

조항과 상황 사이 간극, 법률제정으로 메울 수 있을까

새로운 법을 도입하더라도 개별 성범죄 사건에 적용되는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비동의 간음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 성관계를 가지면 처벌이 가능해진다. 최성호 교수는 “다변적 욕구를 가진 인간의 행위 특성상 ‘의사에 반한다’는 개념은 굉장히 규정하기 어렵다”며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박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권의 일종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 여부를 재판부에서 개별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결국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했는지의 여부는 판사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문구를 추가하더라도 무엇이 죄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해석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김형진 변호사 또한 “입법을 하더라도 우리 사회나 사법부가 법 제정 의도 그대로 해석할지는 모르는 일”이라며 “법 조문이 현실에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정황을 상세히 설명할 수 없기에 법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가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오랜 시간 성범죄 처벌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 김 변호사는 “법조문을 근사하게 고쳐도 결국 법의 해석은 사회를 지탱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반영된다”며 “재판부를 비롯해 사회 전반적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같은 사례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9년 조두순 사건 이후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관한 법률이 많이 발의됐다. 하지만 그 법안들은 판사의 재량권을 침해한다거나 양형기준이 높아도 지켜지지 않는 것이 실질적인 문제라는 이유로 폐기됐고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마찬가지로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에 관한 현재의 관심도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하나의 이슈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까닭이다. 김 변호사는 “노민스노, 예스민스예스룰 등 새로운 입법 활동이 정치인들의 수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시각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며 “성폭력 피해자가 당장 우리 주변에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며 대중의 관심을 촉구했다. 최성호 교수 또한 “사회적 사실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권위 있는 제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라며 법률에 사회적 합의가 전제됨을 이야기했다. 노민스노, 예스민스예스 룰이 당장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대중의 지속적인 관심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문제의 본질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안희정 재판으로 성범죄를 다룰 때 피해자에 대한 고려가 더 필요하다는 여론은 힘을 얻었다. 그러나 여타 성범죄 사례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는 입법에는 아직 많은 걸림돌이 존재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죄로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는 명백한 성범죄가 만연하다고 주장한다. 빠른 입법과 동시에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숙고도 필요한 시점이다.

김규민 기자 asxcv97@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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