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학점 경쟁을 더욱 부추길 것 같다”

지난달 7일 학사과가 새롭게 마련한 ‘학업성적 처리 규정 일부개정규정안’이 알려진 이후 나타난 학생들의 반응이다. 상대평가 기준을 강화하는 개정안에 학생사회는 ‘학점 인플레이션’이라는 외부의 비판을 의식해 만든 규정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대학신문』 2018년 10월 8일자)

‘학점 인플레이션’은 일부 대학에서 학생들이 높은 학점을 받는 현상을 지적하며 만들어진 말이다. 서울대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대표적인 학교로 꼽힌다. 대학정보공시 사이트 ‘대학 알리미’에 따르면 2017년 서울대의 학과별 졸업생 백분율 점수 평균은 90.66점으로 서울지역 대학 중 2위를 차지했다. 특히 전공과목은 물론 교양과목에서도 전체 수강생 중 A-이상의 학점을 받은 학생이 각각 54%, 50%로 전체 수강자의 절반에 달했다.

이런 ‘학점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무엇일까? 『대학신문』에선 왜 많은 학생들이 학점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지, 이러한 현상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살펴봤다.

◇재수강은 학점 세탁기?=권용진 씨(정치외교학부·17)는 “재수강을 위해 고의로 기말고사를 치지 않는 친구들이 주위에 있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학생들은 주로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 성적을 낮춰 달라고 하거나, 의도적으로 과제를 내지 않거나 시험을 보지 않는 등 성적을 낮게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B학점이 나온 혹은 나올 것 같은 강의의 성적을 재수강 가능 학점인 C학점으로 받고, 재수강해 졸업 학점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와 같은 재수강의 학점 상승효과는 상당하다. 2017년 평의원회가 실시한 ‘학부생 재수강 현황과 제도 개선 방안(학부생 재수강 보고서)에 따르면 재수강한 학생들의 성적이 크게 개선됐다. 2006년 이후 초수강한 뒤 재수강을 한 학생들은 4.3 만점을 기준으로 1.59점 정도의 학점이 올랐다. C+학점을 맞은 학생이 재수강을 통해 A학점 정도로 수업 성적을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택하는 방법은 재수강뿐만이 아니다. 성적이 낮게 나올 것 같은 강의는 아예 수강을 취소해버리기도 한다. 서울대의 수강신청취소 기간이 전체 수업일수의 1/2선까지기 때문에, 수강신청취소 기간 내에 중간고사를 보는 강의의 경우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면 학생들이 수강취소신청서, 일명 ‘드랍지’를 들고 줄을 선다. 실제로 공대 학부생 A씨(전기·정보공학부)는 “중간고사를 보고 성적이 실망스러우면 드랍한 적이 3~4번 정도 있다”고 전했다.

◇학점은 높이고, 졸업은 늦어지고=왜 학생들은 이렇게까지 하며 높은 학점을 받으려고 애쓰는 것일까? 학생들은 많은 곳에서 학점을 기준으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있어 학점 관리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한다. 임정욱 씨(산업공학과·16)는 “졸업 전엔 장학금, 복수전공, 교환학생 선발 등에서, 졸업 후엔 대학원 진학, 유학 등에 높은 학점이 필수”라고 말했다. 교수들도 이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 이정민 교수(경제학부)는 “성적을 낮춰달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종종 있었다”며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현상이라고 생각해 이를 금지했지만, 진학이나 취업 등에서 경쟁이 심하다는 것을 알기에 학생들 입장도 이해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재수강과 수강신청취소, 일명 ‘드랍’이 남발되고 학점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결국 학생들의 역량이 학점관리에만 소진된다는 것이다. 주위 학생들의 평균 학점이 높아지다 보면, 이를 의식해 더 높은 학점을 받고자 재수강이나 수강신청취소를 결정하는 학생들이 다시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렇게 재수강을 결정하게 된 학생들은 졸업을 제때 하지 못하고 초과 학기까지 듣게 돼, 시간은 물론 금전적 부담까지 질 수밖에 없다. 평의원회가 밝힌 학부생 재수강 보고서 결과에서도 재수강 1건당 늘어나는 졸업 소요 기간은 0.18학기로, 6과목을 재수강하는 경우 졸업이 1학기 늦춰지게 된다.

◇과열된 학점 경쟁을 막기 위해선?=다른 대학에선 과열된 학점 경쟁을 막고자 수강신청 및 취소 등에 대한 제도 변경을 해결책으로 내놨다. 연세대의 경우 재수강 횟수를 3회로 제한했으며 고려대는 수강신청변경 기간 이후엔 수강신청취소 자체를 아예 금지했다. 학생들은 이런 제도 변화가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연세대에 재학 중인 B씨(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는 “횟수 제한이 있어 학점을 내리면서까지 재수강하려는 학생들은 많지 않다”면서도 “재수강을 하지 못하니 첫 번째 수강할 때 학생들이 더 치열하게 경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학생인 정동현 씨(고려대 자유전공학부·14)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 수업이 있더라도 중간에 수강을 포기할 수 없다”며 “교육권 보장 차원에서 수강신청취소 제도가 부활하길 바라는 학생이 주위에 많다”고 밝혔다.

이처럼 단순히 수강 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학점 경쟁 과열을 막기엔 한계가 있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학점만으로 학생들을 평가 및 선발하는 방식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 “학점 취득만을 위해 공부하는 것 말고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는 사범대 학부생 C씨(윤리교육과)는 “로스쿨, 복수전공, 교환학생 선발 등에서 학생들의 이런 경험보다 학점을 기준삼아 평가하는 것이 문제”라며 현행 제도를 꼬집었다. 평의원회의 학부생 재수강 보고서를 작성한 사회대 이봉주 학장(사회복지학과) 또한 “현재 학생들 사이에서 A+학점을 받는 비법이라고 이야기되는 것은 결국 교수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는 것”이라며 “학생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 학점이 적절한 지표인지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학생들을 평가하는 방식이 학생의 다양한 면을 평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교육은 한땐 학문의 상아탑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이제 점점 더 많은 학생이 과열된 학점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학생들이 높은 학점만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건 대학교육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긴 호흡을 가지고 학점 중심의 선발 제도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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